34년 만에 공개법정에 모습 드러낸 이춘재…초췌한 모습에 힘 없이 증인선서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56)가 출석해 증언할 법정 모습. 연합뉴스

34년 만에 공개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56)는 짧은 머리카락에 청록색 죄수복 차림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한 채 양쪽 귀 주변으로 허옇게 흰머리가 드러난 상태였다.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지만, 흰색 마스크를 쓰고 있어 좀처럼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춘재가 2일 오후 법정에 출석했다. ‘진범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그는 이날 오후 1시30분쯤 재판 시작과 함께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 재판정에 들어섰다. 

 

다소 힘없이 서 있던 이춘재에게 재판장은 “또박또박 제대로 발음해 선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이춘재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며 차분하게 증인 선서에 들어갔다.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경기 화성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인 이춘재가 신상 공개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재심 법정에서 이춘재는 사건 당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할 예정이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각 2시간씩을 이춘재에 대한 신문에 할애할 예정이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9월 이번 논란의 결정적 증거인 현장 체모가 30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DNA가 손상돼 감정이 불가능하다며 이춘재를 법정에 부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춘재의 얼굴 촬영과 공개를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이춘재가 피고가 아닌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조직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거나, 피고인의 동의가 있을 때는 공판개시 전이나 판결 선고 시에 법정 내 촬영을 허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증인 신분인 이춘재는 공판 시작 후 재판장이 이름을 부를 때만 증인석으로 나올 수 있다. 이에 ‘공판개시 전’에 촬영을 허가한다는 규정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이른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성여(53)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결백을 주장하며 상소했지만 2,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