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세상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에 있다. 검색 창에 질문을 던지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더 직관적 수단도 있다. 동영상이다. 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요즈음 학생들은 ‘선 유튜브, 후 검색’이다. 정보의 왕은 책이 아니다. 문자에서 연행으로, 읽기에서 시청으로 정보 소통의 중심이 이동 중이다. 이러한 시대에 읽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읽지 않고 제대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문자 없이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문자가 생겨나고 책을 일상화한 이래, 우리의 사유는 더 정교해지고, 우리의 내면은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기억은 시공간을 초월해 더 오래, 더 멀리 전달되었다. 축적은 늘 진화의 동력이자 새로운 종의 출현 조건이다. 책이 근대 지식혁명의 중심 동력이고 우리 문명의 중핵인 이유이다. 책을 통해 인류(homo)는 인간(vir)이 되었다. 읽기의 고독과 앎의 고통 속에서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는 자의식을 이룩하고 세계 속에서 자기 서사를 써 나가는 주체가 되었다. 읽기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동영상이 물리적인 책을 대체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읽기’를 작동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따비)는 유튜브 시대의 ‘리터러시(literacy)’ 문제를 놓고 김성우와 엄기호 두 학자가 나눈 ‘뜨거운 대화의 기록’이다. 리터러시는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책은 문서에 한정되었던 리터러시를 영상으로, 나아가 삶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한다. 이는 읽기를 통해 나타난 근대 주체를 넘어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을 읽어 자기화하려 하는 근대 주체의 문제는 ‘타자의 배제’이다. “말을 듣고 응답하는 2인칭의 위치는 희미해지고 읽는 것을 통해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는 주체라는 1인칭만 강조”되는 것이다. 이 주체는 흔히 자기가 읽은 세계만이 옳고, 타자 역시 자기와 똑같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시험이 딱 그렇다. 출제자가 정한 의미를 수험자가 받아들일 때만 정답을 맞힌다.
그러나 온갖 미디어를 통해 동시에 정보를 주고받는 복합미디어 환경에서는 “주어진 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알고 그 “감정의 강도”에 어떻게 공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에 따라 리터러시도 “맥락을 파악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능력”으로 바뀐다. 오늘날 리터러시는 자기 의미에 몰입하는 ‘홀로 주체’보다 겸손히 자기를 성찰하고 타자에게 귀를 열어서 함께 세계를 지어 가는 ‘서로 주체’로 사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문서의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을 넘어서 인간이 함께 “삶을 영위하고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량”인 것이다.
읽기가 “생각으로라도 남이 되어 보는 경험”이자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인식하는 힘”임을 저자들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읽기는 독서, 즉 ‘깊이 읽기’에서 확연히 경험할 수 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유튜브를 읽는 힘은 여전히 독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