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 재밌다.”
허리 뒤로 뒷짐을 진 백발의 어르신이 검정 뿔테 너머로 그림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앞에 걸려 있던 작품은 윤상윤(42) 작가의 ‘왼손 그림’이었다. 그는 이어 윤 작가의 ‘오른손 그림’ 앞으로도 다가가 천천히 그림을 살폈다. 윤상윤 개인전에 예고 없이 찾아와 조용히 작품을 둘러보던 그는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윤 작가를 가르친 스승, 최상철(74) 화백이었다.
그의 오른손 그림은 금방이라도 찰랑거릴 듯한 물, 화면을 조화롭게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색채, 사람들의 옷깃과 머리칼, 흩날리는 꽃과 나뭇잎과 그림자까지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으로 놀랍다. 무엇보다 극사실적 현실을 묘사한 것 같으면서도 잔잔한 물속에 발이 잠긴 모습은 분명히도 판타지여서 신비롭다. 그의 오른손 그림은 그렇게 저마다 소재를 달리하면서도 잔잔한 물, 그 물에 발이 잠긴 사람들, 그 사람들 위의 한 사람이 3개 층으로 구조화돼 있다는 공통점이 특징이다. 이 구조는 초현실적 풍경화가 주는 신비로움의 결정타다.
윤 작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바닥에 깔린 물을 인간의 무의식으로, 그룹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자아로, 그 위 단 한 명의 개인을 초자아로 생각하며 이런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꼭 이 틀에서 그림을 느끼기보다 관객이 넓은 영역에서 자유롭게 해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중 속에 우뚝 서 떠오른 한 사람은 마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한 위대한 개인 같기도, 군중에서 떨어진 외로운 자아 같기도 하다. 영국 첼시예술대 대학원 유학시절 이방인으로서의 경험 역시 집단과 개인의 관계, 혹은 집단을 바라보고 조망하는 개인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준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왼손 그림에서도 그가 영국 첼시에서 머물던 시절, ‘영국 국민’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살던 히피들의 모습에 그가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혔는지 느껴진다. 왼손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 중 상당수가 히피들의 결혼식, 히피들의 축제, 히피들의 놀이다. 오른손 그림에 등장하는, 중세 어느 마을에서 열리는 그림교실이 정돈된 아름다움을 주는 것과 대비돼 더 즉흥적이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가 본 사진 등을 토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 느꼈던 이미지 위주로 수정 없이 한 획에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왼손 그림들을 완성했다고 한다. 다음달 12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