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담은 새 임대차보호법 입법 당시 우려한 부작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청년·서민층이 주로 선택하는 주거형태인 월세 지출 통계가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세매물 부족으로 전셋값이 급등한 가운데 전세마저 구하지 못한 전세난민이 월세로 내몰린 탓이다.
정부가 집중 타깃으로 삼은 다주택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서울 강남 30평대에서 20억원 넘는 전셋값 기록이 나오는 등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서민 주거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부의 정책 헛발질이 서민 고통을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실제주거비’ 지출은 월평균 8만42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늘었다. 2분기에는 1.8% 감소한 7만8900원이었으나 3분기 증가로 돌아선 것이다. 실제주거비 금액만 놓고 보면 적어 보인다. 자가나 전세로 거주해 월세를 내지 않는 가구까지 모두 포함해서 낸 통계라서 그렇다. 월세 가구만 따로 집계한다면 지출액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실제주거비를 소득 계층별로 보면 전체적으로 소득하위 가구의 실제거주비가 소득 상위 가구보다 더 많고 증가율도 크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고, 월세로 수요가 몰린 결과로 해석된다. 부동산정보 플랫폼인 ‘다방’의 지난달 서울 ‘원룸과 투룸·쓰리룸 임대시세 리포트’를 보면 이 유형의 월세는 9월 대비해 10%가량 올랐다.
월세는 상대적 주거 취약계층인 청년층 점유 비율이 높다. 이들의 주거비 부담이 훨씬 더 크다는 뜻이다. 국토교통부의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청년층의 주거 형태 중 월세가 50.2%로 가장 많았다. 일반 가구 23.0%의 2배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가 품귀 상태가 되다 보니 월세가 늘고 가격이 올라 서민·저소득층 부담만 커졌다”며 “정부 정책이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매물이 없다 보니 전셋값은 브레이크 없는 상승세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3층)가 20억원에 전세 계약됐다. 지난 9월 15억7500만원(9층)에서 2개월 만에 4억원 넘게 뛴 가격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잇단 규제에도 다주택자는 오히려 늘었다. 통계청의 ‘2019년 주택소유통계’ 세부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으로 주택 5채 이상을 소유한 ‘집 부자’는 11만8062명이다. 전년도 11만7179명보다 0.75%(883명) 증가한 것으로, 2012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다다. 10채 이상 다주택자도 집계 이래 최다였다. 반면 지난해 일반 가구 중 소유 주택이 단 한 채도 없는 무주택 가구는 1년 전보다 1.6%포인트 증가한 43.6%였다.
여론은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는 상황이다. ‘11·19 전세대책’ 다음날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54.1%가 대책에 대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패닉바잉’의 주축인 30대에서 부정적인 응답이 64.1%로 가장 높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등과 같은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실언에 대해 “책임 있는 정책 당사자란 사람들이 나와서 쓸데없는 말을 해서 더 국민을 갖다가 괴롭히는 그런 짓은 삼가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나기천·이창훈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