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위는 지난 18일 3차 회의를 열어 예비후보 10명을 놓고 검증과 표결을 진행했지만 추천위원 7명 가운데 6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야당쪽 추천위원 2명이 비토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야당 추천위원들은 계속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나머지 위원들은 활동을 사실상 종료하기로 의결했었다. 민주당은 올해 안에 공수처를 반드시 출범시키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이 “깡패짓” “독재로 가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이대로라면 여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극렬 반대하면서 정기국회 예산안 심의와 민생법안 처리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여야 합의 없이 공수처장이 결정된다면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아 극심한 정쟁과 국론분열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야당, 비토권 행사로 후보추천위 무산
◆공수처 연내 출범시키려는 이유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조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이다. 민주당은 공수처를 연내 출범시키지 못하면 문재인표 검찰개혁의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내년 4월7일로 예정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부터 여야 모두 서울·부산시장 공천 등 모든 이슈가 보궐선거로 쏠리게 되면 검찰개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친문 진영에서는 “국민이 여당에 압도적 의석을 몰아줬는데도 개혁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공수처가 출범돼야 “검찰개혁이 끝날 때까진 장관직을 물러나지 않겠다”고 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교체할 명분도 생긴다.
◆법 개정 강행 땐 정치적 부담 크고 역풍 우려
공수처가 초법적 권한과 지위 논란에도 제도로서 영속하려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 확보가 생명이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법 제정 때 민주당 스스로 넣은 야당의 비토권을 이제 와서 되돌리는 것은 약속 위반이자 명분이 약하다. 민주당은 야당 비토권을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맞서는 ‘핵심 무기’로 삼아왔다. ‘공수처가 정권의 친위 기구가 될 것’이란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야당의 비토권이 확실히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야당 비토권을 폐지하면 공수처 중립성을 포기한다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5선 중진이자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야당의 비토권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무력화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수처법 개정에 비판적이다. 두고두고 여당의 발목을 잡는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개정안에는 공수처 검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등 독소조항이 많아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야당 ‘현실적 한계’ 고민
국민의힘은 최대한 저항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법치주의 파괴, 우리나라 수사기관 파괴, 검찰 독재, 공수처 독재로 가는 이런 일들을 국민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석수가 부족해 표결로 막을 수는 없다. 과거와 달리 몸싸움도 하기 어렵다. 육박전 같은 물리력 행사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처벌되기 때문이다. 야당이 선택할 카드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각종 쟁점 법안이나 예산처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당이 단독처리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야권 공동대응을 제안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장외투쟁도 여의치 않아
국회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민주당의 행태로 보면, 개정안 통과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국민들께서 막아주시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야당은 “공수처장을 사실상 여당이 마음대로 낙점하는 구조가 된다면 공수처는 출범부터 권력보위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며 대국민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연내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수결에 밀리는 국민의힘이 공수처를 막을 방법은 국민여론을 주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장외투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확산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 나올 우려가 있어 꺼내들기가 어렵다.
◆남은 변수는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은 지난 20일 헌법재판소를 항의방문했다. 헌재는 헌법에 기초해 국가적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2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공수처법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지만 헌재가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헌재는 “공수처법 관련 평의는 현재 진행 중이며 위헌 여부도 신속하게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재판관 구성이 진보 우위 상태인 점을 들어 위헌 여부 결정이 올해 안에 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cjord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