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채뿐인데… 소득 없는 은퇴자는 어쩌라고” 분노

‘종부세 폭탄’ 심상찮은 민심
“퇴직한 사람은 거주 자유도 없나
집값 내리면 나라가 보전해 주나”
국민청원 글에 하루 수천명 동의
‘차라리 자식에게 증여’ 분위기
“집값 수억 올랐는데 세금은 당연”
“세금 더 올려야 집값 하락” 의견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올해 대폭 상승한 공시가격을 반영한 종합부동산세가 고지되면서 납세 대상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집값 상승과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에 따라 지난해보다 종부세가 크게 오른 집주인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가운데 고액 전세나 월세 세입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도 있다.

25일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종부세 고지서 발송 소식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별다른 소득 없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나 올해부터 새로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된 1주택자들은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85㎡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50대 A씨는 “지난해엔 200만원 조금 못 되는 액수가 나왔는데, 올해는 350만원을 내란다”며 “집을 여러 채 사고팔면서 돈을 남긴 게 아니라, 20평대 아파트 하나에 아내와 단둘이 실거주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세금을 많이 올리는 게 맞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재산세까지 합치면 1년에 10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내년에는 얼마나 더 오를지 상상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종부세. 퇴직한 사람은 거주의 자유도 없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엔 하루 사이에 2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청원인은 “은퇴자, 퇴직자는 강남에 살 수 없느냐”며 “투기꾼이 아니기 때문에 집값이 몇년 전에 몇억원씩 빠져도 그냥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값이 내리면 보전을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취득세, 재산세 내고 집 팔 때 양도소득세 내는데 왜 종부세까지 이렇게 많이 내야 하느냐”며 “이익을 실현한 것도 아닌데, 적당히 좀 부과하자”고 지적했다.

종부세를 낼 바에는 차라리 증여세를 택하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8월부터 증여 취득세율도 함께 인상됐지만, 여전히 증여에 대한 문의가 꽤 있는 편”이라며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가 양도세 설명을 듣고 자녀에게 넘기겠다며 다시 거둬들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주택 증여 건수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11만9249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증여 건수(11만1864건)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서울 강북권 아파트 소유자는 종부세와 재산세 등 해마다 수백, 수천만원씩 보유세를 내는 것과 달리 강남권 고가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B씨는 “지인 중에 가장 돈 많은 사람은 본인 재산은 차명으로 돌려놓고, 강남에 20억원짜리 전셋집에 산다”며 “임대차법 생기고 세입자가 여러모로 유리해졌는데 강남 아파트에는 세입자한테도 세금 때려야(부과해야) 한다”고 적었다.

반면 종부세 인상이 조세정의 실현에 부합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값이 수억원씩 뛰었는데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거나 “세금을 더 올려야 집값도 떨어진다” 등 종부세 인상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나도 기쁜 마음으로 종부세 낼 생각이 있다”는 댓글도 다수의 공감을 받았다.

정부도 종부세 인상이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지방재정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문재인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증세는 없다”고 밝혀온 만큼 1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 증가분에 대해서는 속도 조절이나 일부 감면 조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일 공시가격 6억원 이하 1주택자의 재산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종부세 조정은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을 비롯한 강남권 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올 종부세 4조 넘어… 대상자 15만명 폭증

 

올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납세의무자가 15만명 가까이 늘고, 세액도 1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국세청은 25일 2020년분 종부세 납세의무자 74만4000명에게 4조2687억원을 고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고지인원은 14만9000명(25%), 고지세액은 9216억원(27.5%)이 늘어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가 66만7000명으로 전년도 52만명보다 14만7000명(28.3%) 늘었고, 세액 기준으로는 1조8148억원으로 전년도 1조2698억원보다 5450억원(42.9%) 급증했다. 지난해 주택분 종부세를 내다가 올해 증여와 매매 등을 통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에서 벗어난 이들을 감안하면, 올해 새로 주택분 종부세를 내게 된 인원만 최소 14만7000명이 넘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종합합산 토지분 및 별도합산 토지분 종부세는 9만8000명에게 2조4539억원이 부과됐다. 지난해보다 6000명(6.5%), 3766억원(18.1%) 늘어났다.

 

종부세는 매년 6월 1일을 기준으로 각자 소유한 주택 또는 토지의 공시가격 합계가 자산별 공제액을 초과하는 사람에게 부과된다. 주택 공제액은 6억원(1세대 1주택자는 9억원)이다. 종합합산 토지와 별도합산토지 공제액은 각각 5억원, 80억원이다.

 

올해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와 세액이 많이 늘어난 데에는 시세 상승을 반영한 공시가격 상승, 공시가격 현실화율 상향조정, 종부세 과세표준을 산출하기 위해 공시가격에 곱해주는 공정시장가액 비율 상향조정(85→90%) 등이 영향을 미쳤다. 종부세율은 전년과 같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전국 5.98%, 서울 14.73%였다. 강남(25.53%)·서초(22.56%)·송파(18.41%) 등 고가아파트가 많은 강남 3구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올해 주택분 종부세 대상 66만7000명 가운데 서울 거주자는 39만3000명으로 전체의 58.9%였다. 세액은 1조1868억원으로 65.4%였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인원은 9만5000명(31.9%), 세액은 3571억원(43.0%) 각각 급증했다. 1인당 평균 세액을 따지면 지난해 278만원에서 올해 302만원으로 늘었다.

 

서울 다음으로는 경기도의 고지인원이 14만7000명으로 전체의 22%를, 세액은 2606억원으로 14.3%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인원은 3만명(25.6%), 세액은 729억원(38.8%) 증가했다.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든 10명 중 8명이 서울과 경기도 주민인 셈이다.

 

박세준·세종=박영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