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을 접견했다. 왕 위원의 방한은 미국 행정부 교체기를 맞아 미·중 갈등 국면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탐색해 보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됐지만, 직접적으로 미국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문 대통령 “도쿄·베이징 올림픽 성공에 협력”
◆왕이 “한·중, 다자주의 수호해야”…25분 지각, 두 차례 사과
왕 위원은 이날 문 대통령 예방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약 1시간30분 동안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왕 위원은 “(한·중 양국이) 함께 노력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통합을 촉진하며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각자의 기여를 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왕 위원은 지난해 12월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와 최고조로 갈등이 달아올랐을 시기 한국을 찾아 작심하고 미국을 비판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왕 위원은 회담을 마치고 한국 정부에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러 왔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외교가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만 왕 위원은 “(한·중이) 함께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등 다자주의를 강조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미·중 경쟁구도에서 일방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을 완곡한 어조로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왕 위원은 시 주석 방한과 관련해 “조건이 성숙되자마자 방문은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자들의 마스크를 가리키며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 이 ‘조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민감한 시기 시 주석이 방한하려면 우리 정부가 ‘성과’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반면 왕 위원은 이날 회담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다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 위원은 이날 회담에 ‘개인 사정’으로 25분 늦게 도착했다. 왕 위원은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회담 전과 후 두 차례 사과를 전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왕 위원이 강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 측이 중·한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초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현준·홍주형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