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잠자리” 자랑한 경찰관, ‘강간’ 무죄… 이유는?

사진 촬영·유포는 유죄… 성폭행 혐의는 “진술 번복” 무죄
‘제자·동료 성추행 혐의’ 법정구속 대학교수도 판결 뒤집어
여성·시민단체, 재판부 성인지감수성 제고 요구하며 반발

동료 여경을 성폭행하고 속옷 차림을 사진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직 경찰관이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를 벗었다. 사진 촬영·유포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 진술 번복과 검찰의 증거 부족 등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이 법원은 앞서 제자와 동료를 성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대학교수에 대한 항소심에서도 이와 유사한 취지로 판결을 뒤집었다. 지역 여성·시민단체는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 제고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주)는 27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상 강간,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전직 순경 A(26)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해 여경의 속옷 차림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포한 혐의는 1심 판결과 동일하게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이 명령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장애인복지시설에 5년간 취업 제한도 인용했다. 이로써 A씨의 형량은 징역 3년6개월에서 징역 1년6개월로 낮아졌다.

 

A씨는 2018년 8월쯤 동료 여경을 힘으로 제압해 성폭행하고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는 모습 등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경찰 동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동료와 성관계를 했다”고 말하며, 몰래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내용이 소문을 통해 경찰 내부에 급속히 확산하자 전북경찰은 진상을 파악한 뒤 공식 수사에 나섰고 A씨는 결국 법정에 섰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를 저수지에 버리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가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이를 마치 합의로 성관계한 것처럼 주위에 얘기해 피해자 명예까지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는 일련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진을 촬영해 자랑한 행위는 잘못했지만, 성관계는 합의에 의한 것일 뿐 절대 강간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동기들에게 사진을 보여준 것도 고의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변호인 측 역시 상대자가 사건 발생 뒤 15개월 동안이나 신고 등을 하지 않은 점과 이후에도 술자리에 함께 한 점 등을 들어 강압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범행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자에게 굉장한 수치심과 정식적 고통을 안겨줬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고소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원치 않는 성관계 사실이 동료 등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사건 이후 술자리에 함께 참석한 것도 2차 피해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봤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은 일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의 진술 번복과 사건 이후 행태, 검찰 측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강간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 진술이 사건 주요 부분에서 번복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앞 진술과 다른 얘기를 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사건 당일 옷차림에 대한 진술도 경찰, 검찰, 법정마다 다르다”고 지적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 행태에 대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 내용을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선물을 주고 피해자는 피고인과 술자리를 함께하는 등 가깝게 지낸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범행 이후 사이가 멀어졌다는 피해자의 진술과도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A씨가 동료에게 자랑삼아 ‘잠자리’ 얘기를 한 점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했다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취지의 말을 경찰 동료들에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범행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강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전주지법은 제1형사부(부장판사 강동원)는 지난달 28일 대학 제자와 동료를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전주대 박모 교수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범죄를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은 사건 발생 시간과 장소, 상황 등에서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검사가 제기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2018년 ‘연극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승용차와 사무실 등에서 동료 교수와 학생 등 2명을 입맞춤하거나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자 박 교수는 피해자들이 자신을 악의적 의도로 음해한다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기도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배우나 스텝으로 참여하는 학생, 동료 교수를 상대로 범행해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자신을 음해한 것이라는 박 교수 주장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며, 무고죄를 감수하면서까지 거짓 진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 교수는 항소했고 결국 무죄를 받았다.

 

여성·시민단체는 2심이 무죄 판결 직후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아니라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이 문제”라고 주장하며 “시간이 오래 지난 기억을 요구하는 피해자 진술을 강요해 심각한 2차 피해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사법부는 성폭력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성인지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교육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사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고 ‘사실오인’ 등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