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 하는 것도 지겨워요.”(경기 안산시 단원구 거주 40대 학부모)
12년 전 초등 여학생을 납치, 성폭행한 조두순의 만기 출소일(12월13일)이 보름도 남지 않자 안산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조두순이 거주지였던 안산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산시와 경찰이 시민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조두순이 살았던 집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고 전담 경찰관을 배치하기로 했지만 최근 조두순이 인근 지역으로 이사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예민해진 시민이 적지 않다. 맘 카페 등 안산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조두순 아내가 이사하는 곳이 어느 동네의 무슨 단지인 것 같다’는 추측성 글부터 자녀 안전이나 집값 하락 걱정 등 조두순 관련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초등생 자녀를 둔 30대 A씨는 “어린 딸이 학교에서 ‘조두순’이라는 이름을 듣고 물어왔을 때 가슴이 덜컥했다”며 “주소공개와 전자발찌 착용은 길어야 7년이다. 범죄자가 활보하고 무고한 시민과 피해자가 도망 다니며 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두순이 거주할 것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다는 60대 B씨도 “12년 전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며 “출소일이 다가올수록 주민들도 불안과 초조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형기를 마친 강력범을 일정 기간 보호시설에 격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조두순 격리법’ 마련에 나섰지만 여론을 의식한 졸속 추진이란 지적이 많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26일 협의에서 흉악범의 출소 후 일정 기간 보호시설에 격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조두순의 출소까지 입법이 불가능하다. 조두순 이름을 내건 법안이 정작 조두순에게 적용이 안 되는 셈이다. 국회가 미리 관심을 갖고 입법 작업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지난 9월 발의한 보호수용법안도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보호수용 청구 대상으로 하는 등 위헌 및 인권침해 논란 해소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조두순이 곧 일상으로 돌아오고, 또 ‘제2, 제3의 조두순’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성범죄자 10명 중 6명이 3년 내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성범죄자 3년 내 재범률 62.4%… 조두순 경계해야 하는 이유
29일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성범죄자 신상등록 현황에 따르면 10년간 성범죄로 7만4956명이 성범죄자의 신상이 등록됐다. 이 중 신상 재등록자는 2901명으로 전체의 3.9%다. 2901명의 재등록 성범죄자 중 1811명(62.4%)이 3년 이내 성범죄를 다시 저질렀다. 출소 직후의 조두순을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두순에게 뚜렷한 직업이 없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성범죄를 다시 저지른 재등록대상자 중 무직 비율이 44.7%(1296명)로 가장 높았고 단순노무자가 18.8%(544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조두순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일자리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며 사회 적응 준비를 한다고 하나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가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조두순의 재범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운 상태다. 당국은 조두순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내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주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CCTV를 확대 설치했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안산단원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5명을 특별대응팀도 편성했다. 조두순은 당초 거주하기로 했던 아파트가 아닌 안산시 내 다른 주택으로 주거지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국은 특별관리 계획을 재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와 불과 50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살았던 피해자 가족은 조두순의 사회 복귀에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피해자의 부친은 “조두순은 법정에서 피해자의 기억이 잘못됐다고 주장했고 사과와 반성도 없는 사람”이라며 “11년 전 영구격리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조두순의 처벌이 더 강력했다면 시민 불안감도 줄었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검찰은 조두순의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은 조두순의 나이가 많고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와 상고까지 했지만 최종심은 1심을 확정했다.
◆조두순 출소 막을 길 없어… 보호수용제 도입돼도 조두순에게 적용 어려워
조두순의 출소로 사회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의 석방을 막을 방법은 없다. 재심은 처벌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조두순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한번 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조두순 형의 연장도 불가능한 상태다. 교정당국 관계자는 “가석방도 아니고 실형을 마치고 나가는데 이를 막을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시설 수감 중에 치료에 집중하고 출소 후에는 보호관찰을 하면서 동일한 범죄를 막도록 신경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뒤늦게나마 형기를 마친 강력범을 일정 기간 보호시설에 격리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두순처럼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중상해를 입히거나 재범 우려가 큰 흉악범에 대해서는 형기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격리할 수 있도록 보호수용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보호수용제란 1980년 신군부가 삼청교육대 교육생 격리를 위해 제정한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로 운영됐지만 2005년 이중처벌 및 인권침해 비판 속에 폐지됐다. 하지만 보호수용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형기를 마친 사람들에게 소급적용할 경우 위헌 논란이 있어 조두순은 청구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성범죄자 처벌 강화 목소리 높아…조두순 ‘사적 응징’ 움직임 우려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의 경우 각각의 혐의에 대한 형량을 선고한 뒤 이를 모두 더해 형량이 결정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중한 죄의 2분의 1까지만 가중하도록 돼 있다. 해외의 경우 수백년의 형이 내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두순의 출소 소식에 ‘응징하겠다’는 예고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국내 격투기 헤비급 최강자인 명현만씨는 조두순을 찾아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조두순을 찾아가 그의 일상을 촬영해 올린다거나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하는 영상을 공개하겠다는 유튜버들의 예고도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조두순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관계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며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필재·이도형·곽은산 기자, 안산=오상도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