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21일 헬기사격이 있었습니다.”
30일 광주지법 201호 형사 대법정에서 열린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재판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자행됐다며 유죄 판결했다.
재판부가 80년 5월 21일 헬기 사격의 증거로 전교사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을 들었다. 김 부장판사는 “1978 육군항공 교범에는 탄약 높은 소모율이 있다. 이 문서는 항공교범의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교훈집 전체 내용상 실제 헬기사격 있었다고 전제로 상황 분석한 것이 타당하다. 유력한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도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국과수의 5·18 당시 항쟁 근거지인 전일빌딩 탄흔 분포 형태의 분석을 보면 10층의 탄흔은 UH에 장착된 M60기관총에서 발사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재판은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가 있다. 80년 5·18 직후부터 1988년 광주 청문회, 1995년 특검까지 헬기사격은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결과와 2017년 5개월 동안 활동한 국방부 헬기사격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헬기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정부 보고서에 이어 이번 사법부까지 헬기 사격을 인정해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번 재판에서 헬기 사격이 입증되면서 그동안 시민군에 맞선 자위권 발동이라는 신군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재판부도 “계엄군이 5·18 기간 광주시내에서 헬기 사격을 했다면 전씨의 자위권 발동을 무색하게 하고 국군이 시민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고 밝혔다.
전씨는 이날 재판 시작 10분 만에 꾸벅꾸벅 졸다가 선고 후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법정 밖에서는 재판 내내 시민들과 오월단체의 “전두환을 구속하라”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42분쯤 부인 이순자(82)씨와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 광주로 향했다. 검정 양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온 전씨는 차에 타기 전 자택 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택 앞에 있던 시위대가 ‘전두환을 법정구속하라’, ‘전두환은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치자 “말조심해 이놈아”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이종민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