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61)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최근 비대면 시대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게임업계를 향해 “새로운 IP(지식재산권)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 취임 이후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의 등급설정 등 제재기관을 넘어서 한국 게임업계 발전을 위한 인식개선과 업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관리기관으로 탈바꿈했다. 2018년 8월 “건강한 게임 생태계 마련과 산업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합리적인 사고로 열심히 업무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취임 일성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 고공행진 발표가 나온 뒤인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한국 게임업계 발전을 위해 고급 인력의 양성과 세제혜택 등 지원책을 꼽았다.
―취임 이후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변화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점은.
“우리 기관(게임물관리위원회)은 불법게임을 잡고 등급을 검토하는 기관으로 수면 아래 항상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유일한 게임산업 관련 공공기관으로 제재기관이 아닌 관리 및 부흥기관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최근 게임산업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소를 발족했고 태국 정부와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진행했다. 글로벌 게임 관련 기관들과 손잡고 국제등급분류 협의체를 주도할 계획이다. 또 게임의 사후관리를 위해 게임사 직원들과 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게임 등급을 직접 분류하는 경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후관리도 체계적으로 가야 한다. 사후관리 센터 구축을 통해 불법적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등급 회피 등을 철저하게 방지했다. 교육축과 정책연구축, 사후관리축 등 이 세 개 축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게임 관련 생태관리기관으로 재탄생했다. 규제만 해선 안 된다. 진흥을 함께 균형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실적 고공행진 중인 게임사에 바라는 점은.
“기업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과거의 열정이 없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새로움을 창출해야 한다. 세계는 넓지만 무한경쟁에 시대다. 게임사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고 재투자와 연구를 게을리하면 소재는 고갈되고 유저들로부터 받는 인기는 곧 소멸된다. 업계는 새로운 IP 만드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지금 기존 곳간에 쌓인 IP 털어서 재활용 중인데 그 전에 새로운 IP를 채워야 한다. 스토리 없는 게임은 앞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애니팡’과 ‘앵그리버드’, 두 IP를 자주 비교한다. 애니팡은 하트를 획득하기 위한 목표 말곤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를 유저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앵그리버드의 육탄전은 내 알을 훔쳐가는 돼지들과 싸워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게 스토리다. 왜 유저가 게임을 하고 있는지. 이유는 알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스토리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기승전결’이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IP로 정착한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게임은 향후 치열해지는 글로벌시장에서 발붙일 수가 없다. 스토리가 있는 제대로 된 IP를 하나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게임의 위상을 어떻게 보는가.
“매출면에서는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4위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4위 이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비상이 무섭다. 중국은 그동안 양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왔다. 우리는 양이 아닌 질로 가야 한다. 그나마 한국 게임이 버틸 수 있는 것은 IP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을 중단해 한국 게임을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에서 1조원이 넘는 수익을 내는 것이 현실이다. 물량 공세와 거대한 자본력,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와 경쟁을 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중국 게임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IP가 필요하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산업을 보고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고급 게임인력들을 키워야 한다. 또 정부 차원에서 세제혜택을 통해 게임사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등 적극적인 진흥책을 찾아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생각하나.
“게임은 자율성을 주되 책임감을 높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게임의 부분 유료화로 인해 확률형 아이템 의존도가 너무 심화됐다. 아이템을 팔아야 게임사의 수익이 극대화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액제를 포함해 다양한 게임 상품이 개발돼야 한다. 그리고 게임사들도 스스로 개발한 게임의 글로벌 성과에 대해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우후죽순 내놓는 것보다 유저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는 IP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또한 게임사들이 개발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도전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 게임사에서 어떠한 위원장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잔소리꾼이 되고 싶다. 게임산업을 응원하는 존재로 계속 남고 싶다. 우리 국민이 신뢰하는 게임, 좋아하는 게임, 돈 많이 버는 게임, 그래서 부자나라가 되는 그런 게임 세상을 꿈꾼다. 또 하나의 바람은 나이가 들어 수전증이 올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게임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고 싶다.”
대담=박종현 산업부장
정리=김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