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들은 현행 법령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생활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다.
2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을 살펴보면, 1998년 4월11일 이후에 건축하거나 증·개축, 용도변경을 한 일반음식점, 카페·제과점 등 중에서 바닥면적이 300㎡(약 90평) 이상인 경우에만 장애인 등이 통행 가능한 출입구 접근로를 설치하고, 출입구 높이차를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 개정 권고… 정부 “소상공인 부담 우려”
국가인권위원회도 해당 시행령 탓에 장애인들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정부에 시행령 및 관련 법 개정을 권고한 상태다.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2017년 말 내놓은 권고 결정문에서 “바닥면적과 건축 일자를 기준으로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일률적으로 면제하는 것은 장애인의 시설물 접근권을 명시한 장애인 등 편의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장애인의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 평등권 등이 침해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300㎡ 이상으로 규정된 면적 기준을 ‘50㎡ 이상’으로 개정하고, 편의시설 설치에 따른 시설주의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 지원을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민간 사업주들의 반발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개정이 힘들다고 한다. 영세한 소상공인들에게까지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접근권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요구하는 부분이지만, 시장 등에서는 이를 강한 규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법 개정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파출소·행정복지센터 접근도 쉽지 않아
장애인들은 면적 기준이 제한된 공중이용시설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출입구 접근로 등을 설치해야만 하는 공공건물에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 70여개 단체가 올해 7∼8월 전국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 2990곳 중 1615곳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10곳 중 1곳(12.1%, 196곳)가량은 휠체어를 이용해 출입구에 접근하기 힘들었다. 경사로가 설치된 1128곳(출입구에 턱이 없는 곳 제외) 중 폭이 좁아서 이용하기 어려운 곳은 251곳(22%)이었으며, 경사로가 가파른 곳은 449곳(40%)에 달했다. 주 출입구에 시각장애인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298곳)과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된 곳 중 상태가 좋지 않은 데(502곳)도 적지 않았다.
장추련이 지난해 7∼8월 전국 행정복지센터 3499곳 중 1794곳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에서도 주 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200여곳에 달했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선택·접근권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장애인이 모든 건물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위한 시혜성 복지가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라며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정부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장애인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소상공인이 설치비를 부담하기 어려우면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라도 법 개정을 해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추련은 시행령 내 면적 제한 기준을 없애고, 대신 시설 규모 등에 따라 정부 지원 형태를 다르게 하는 방향의 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턱 때문에 접근이 안 되다 보니 (장애인들은) ‘뭘 먹고 싶으냐, 메뉴를 뭐로 정할 거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며 “가게 앞을 봐서 계단이나 턱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더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거나 (식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촉구했다.
글·사진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