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스테파노 만쿠소/임희연 역/더숲/1만6000원
새콤하고 살짝 단맛이 나는 채소 토마토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 ‘주변 환경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오래된 ‘이민자’다. 아메리카대륙의 페루와 멕시코 사이 지역에서 유래한 외래종이었다.
대항해 시대인 1540년,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 코르테스는 멕시코를 정복한 뒤 유럽으로 토마토를 들여왔다. 하지만 처음에는 쓸데없는 작물로 취급받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낯선 열매로 여겨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장식용으로만 쓰일 뿐이었다.
“식물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저자는 이외에도 시칠리아섬 에트나산의 경사면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대의 상징이 된 국화과의 세네시오 스쿠알리더스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식물이란 이동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들은 먼 곳까지 이동한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식물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생애 동안 이동할 수는 있다.”
저자는 식물이란 ‘여행자’일 뿐 아니라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피폭 지역에서 살아남은 승리한 ‘전투원’이고, 최대 86일 동안 물에 뜰 수 있는 씨앗을 가진 아스파라거스처럼 먼바다를 항해하는 탁월한 ‘선장’이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상당수 나무는 과거에서 현재로 온 ‘시간 여행자’이기도 하다.
수령이 무려 9500세가 넘는 스웨덴의 독일가문비나무 ‘올드 티코’ 이야기도 놀랍거니와 2000여년 만에 부활한 팔레스타인 마사다의 대추야자 이야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자는 식물의 놀라운 모험담을 ‘개척자’ ‘항해자’ ‘시간 여행자’ 등의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며 유려한 글솜씨로 펼쳐보인다.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성찰을 균형감 있게 버무려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나 식물에 대한 생각을 단박에 전복시킨다. 식물의 세계는 조용한 것이 아니라 늘 시끌벅적하며, 식물은 동물보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자기 의견도 확실히 전달한다고. 그리하여 바람에 실리거나 동물 털에 달라붙거나 아니며 동물 내장을 거치는 등 혁신적인 다양한 씨앗 퍼트리기 전략을 구사해 무한히 확장하는 존재임을 각성시킨다.
저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이탈리아 피렌체대 교수로 ‘국제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를 이끌고 있으며, 2013년 ‘뉴요커’에서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 식물학자이다. 그는 이번 저작에서 식물의 이동에 초점을 맞췄다. 식물학자 신혜우씨는 감수의 글에서 “우리와 식물 간의 상호 작용과 인생에 대한 철학으로 생각의 저변을 넓힌다”며 “우리가 지구에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생물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길을 안내할 것”이라고 평했다.
혹시 내년 여름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 기사를 다시 검색하는 순간, 텃밭에 심어놓은 토마토가 바람에 기대어 몸을 거세게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토마토가 몸을 흔드는 건 바람 때문일까, 토마토의 생존의지 때문일까. 만쿠소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물을지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