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항모 예산은 왜 1억원만 배정됐을까 [박수찬의 軍]

한국 해군 대형수송함 마라도함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정박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 영토에서 떠도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가 있는데 항공모함이 필요해요?”

 

지난달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 회의장. 52조원이 넘는 내년도 국방예산안을 놓고 의원들과 정부측 간의 줄다리기가 한창이었다.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경항공모함 사업 심의에서였다. 방위사업청과 해군은 “사업 추진 여지를 남겨달라”며 착수금 10억원 반영을 거듭 요청했으나, 연구용역비 1억원만 포함됐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52조8401억원 규모의 내년도 국방예산안을 의결했다. 

 

국방부가 지난 8월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탑재 경항모 건조를 공언한 지 4개월만에 이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형 경항공모함 상상도.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도한 욕심 부리기” “주변국 위협 대응”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국방위 예산심사소위에서는 경항모 사업과 관련해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과 안규백 의원은 101억800만원, 김병주 의원은 10억원 증액 의견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가 방사청이 올린 내년 사업예산 101억원을 전액 삭감한 상황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은 마련해주자는 취지였다.

 

소위에 참석한 방위사업청 서형진 차장은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이 사업(경항모)은 특별히 검토해 10억 정도는 반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항모 사업 관련 타당성조사나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절차가 끝나지 않아 예산 책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논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국민의힘 신원식, 윤주경 의원은 “경항모는 북한 위협에 대응에 소용이 없다. 경항모 유지비 때문에 10~20년 후에는 국방비 다 여기에 넣어야 한다”며 “경항모가 미래 안보위협에 필요하다고 그러면 그때 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정일식 소장은 “북한에 압도적 우위를 갖고 전쟁에 임하는게 필요하다”며 “중국은 항모 2척을 갖고 있고 6척까지 늘릴 계획이다. 일본도 이즈모함을 항모로 개조할 방침인데, 주변국들이 우리 해역을 위협하면 우리도 최소한의 억제전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신 의원은 “우리가 지금 멋부릴때가 아니다. 더 성능좋은 이지스함과 구축함을 만들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은 대형 잠수함이 잠항하면 못 건드린다. 해군은 우리 안보에 맞는 전력건설 방향을 세워 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경항모는) 언젠가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우리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며 “1년 정도 더 토론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해군 F-35B가 항모 퀸 엘리자베스 갑판에서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제공

반면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는 경항모가 필요하다”며 “아직 확정된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방사청이 요청한) 10억은 가능성을 더 타진하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의 부정적 의견이 지속되자 황 의원은 “경항모의 적절성을 따지는 용역을 위해 1억이라도 예산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떠냐”며 “용역이라는 것은 앞으로 더 검토하라는 이야기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신 의원은 “부대의견으로 ‘합참이 주관한다’고 해야 한다. 국방부나 합참 주관 하에 공청회 등을 통해 소요연구를 하라고 해주시면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방사청도 이를 수용해 내년도 경항모 사업비는 1억원으로 결정됐다.

 

다음날은 12일, 국방위 전체회의. 여기서도 경항모는 논쟁거리였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항모는 대국들이 세계를 상대로 운용하는 것이다. 이 좁은 나라에서 무슨 항공모함이 필요하냐. 차라리 핵잠수함에 전력하는 것이 더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항모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F-35A 도입이 먼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바다를 재패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한다. 미래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경항모 사업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해진 예산안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 해병대 F-35B가 비행시험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지 여론 확보와 절차적 정당성 미비

 

무기도입사업은 규모가 매우 크고, 국방비 증액에 부정적인 시각을 잠재우기가 어렵다. 소요제기서부터 실제 양산까지 최대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사업 기간도 길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바뀌거나 기획재정부, 국회 등의 반대에 직면하면 사업은 장기화되고 비용도 늘어난다. 

 

실제 CH-47 수송헬기 성능개량 사업의 경우 2007년 소요결정이 내려진 이후 선행연구만 4차례를 진행했다. 사업방식도 변경되면서 13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경항모 사업은 지난해 7월 장기 신규 소요결정이 내려진 이후 지난 10월까지 개념설계를 포함한 선행연구가 이뤄졌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관 전력소요검증이 이달까지 진행되며, 내년 4월까지 사업추진기본전략과 사업 타당성조사가 이뤄진다. 내년 12월부터 기본설계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경항모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는 2033년. 언뜻 보면 13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20㎜ 자주박격포 사업이 2006년 소요결정된 이후 최초 양산까지 14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사업 추진과정을 면밀하게 구성해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해야 한다.

 

문제는 사업 타당성조사 결과는 내년 전반기에 나오는데, 국회의 내년도 국방예산 심사와 승인은 올해 말이라는 점이다. 예산안이 통과되려면 사업 타당성조사 결과가 필요한데, 경항모 사업은 사업 타당성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예산 승인을 받을 수 없었던 셈이다. 

중국 해군 항모 랴오닝호가 항해훈련을 위해 출항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경항모 전력화 결정을 담은 국방중기계획이 8월에 확정되면서 9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에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회로’도 있기는 하다. 국방획득사업이 1년 이상 지체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쪽지예산’처럼 국회 심사과정에서 신규로 증액되는 경우가 꽤 있다.

 

기획재정부가 삭감했지만 군 당국이 국회에 강력하게 요청하면 국회가 일정 예산을 반영해 주는 방식이다. 

 

실제 내년 국방예산에서는 항공통제기 2차, 군위성통신체계-Ⅱ, 공군 방공통제소(MCRC) 성능개량, K200 장갑차 성능개량 등의 사업이 국회 심의에서 새로 반영됐다. 

 

하지만 경항모는 사실상 전액 삭감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업 타당성 조사 문제와 더불어 경항모 건조 여부를 놓고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항모 보유를 주장하는 측은 중국이 4개 항모전투단 확보를 시도하고, 일본은 헬기호위함 이즈모함과 가가함을 항모로 개조해 F-35B를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주변국에 의한 해양 안보 위협이 커질 것이므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 해군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 한국형 경항모와 유사한 형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경항모를 보호할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확보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며, 작전반경이 좁은 한반도에서 항모의 군사적 효용이 크지 않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경항모 사업의 정상 추진 여부는 부정적 여론을 군 당국이 얼마나 잠재우느냐와 국방획득절차의 신속한 처리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업 타당성 조사 등의 절차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번처럼 1년이 늦어지는 상황이 또다시 발생할 우려도 있다.

 

기획재정부나 국회 등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여야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수 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부정적 반응조차 사전에 막지 못한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내년 이후 경항모 사업 차질이 또다시 빚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