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공작 요원 육성… 이란 핵개발 저지 ‘그림자 전쟁’ 수행 [디펜스포커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최근 핵과학자 암살 배후로 지목
CIA·MI6 등과 합작해 비밀 공작도
주요 요인 암살·시설 파괴 등 주도
이란 잠입 힘들어 비밀 작전 한계
수뇌부 포섭 정보원 활용해 극복
이란 수사·보안 당국자들이 27일(현지시간) 테헤란 외곽에서 일어난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이란 테헤란 동부 지역. 방탄 기능을 갖춘 닛산 승용차와 다른 차량 2대가 부서진 채 발견됐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인물은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사망한 사람은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던 모센 파크리자데.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잔혹한 비밀공작, 모사드의 관여 가능성

이란과 모사드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부터 이란 핵무기 개발에 관여한 과학자와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모사드의 소행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례로 2006년 4월엔 나탄즈에 있던 원심분리기 시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발생했다. 2008년 5월 아라크에 있는 화장품 공장에서는 폭발이 일어나 인근에 있던 핵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비슷한 시기 우라늄을 가스로 전환하는 이스파한 핵 시설도 파괴됐다. 2010년 10월에는 샤하브 탄도미사일을 조립하는 자그로스 산맥의 한 시설에서 폭발이 일어나 18명이 숨졌다.

주요 인물에 대한 습격도 이어졌다. 2010년 1월 핵 개발 계획 고문이던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교수가 출근길에 자동차 폭발로 숨졌다. 11월에는 이란 핵 개발 책임자 마지드 샤리아리 박사가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조사 결과 헬멧을 쓴 오토바이 운전사가 차의 뒷유리에 부착한 초소형 폭탄이 터진 것으로 드러났다. 핵 과학자 페레이둔 아바시 다바니도 같은 방식으로 공격을 받아 부상했다.

2011년 7월에는 다리우시 레자이 네자드 물리학 교수가 집 앞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는 핵탄두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전자 스위치 개발을 맡고 있었다.

이번에 암살된 파크리자데는 모사드가 오래전부터 주목했던 인물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모사드가 테헤란의 비밀시설을 급습해 탈취한 핵개발 기밀자료를 공개하면서 “파크리자데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조직의 책임자”라고 밝혔다.

2020년 11월 27일(현지시간) 이란 핵무기 개발계획 선구자인 모센 파크리자데(59)가 테헤란 인근에서 암살됐다.

모사드는 미국 CIA, 영국 MI6를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들과 함께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한 비밀공작을 수행하기도 했다. 2009년 9월 이란은 시아파 성지 콤에 위치한 핵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했는데, 리언 파네타 당시 CIA 국장은 “3년 전부터 해당 시설을 알고 있었고, 이 시설을 찾아내는 데 이스라엘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모사드의 파상 공세에 맞서 이란도 스파이 색출작업을 하고 있다. 2004년 이란 당국은 이스라엘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10명을 체포했는데. 이 중 3명은 핵시설 근무자였다. 2008년에는 모사드로부터 통신장비와 무기 사용법을 교육받은 이란 시민 3명이 적발됐다. 당시 이란은 더 많은 스파이들이 체포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파크리자데 암살로 모사드의 이란 내 공작 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모사드는 시리아 등에서도 이란을 공격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 등이 표적이었다. 2008년 2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헤즈볼라 핵심 인물인 이마드 무그니예를 제거했다. 무그니예는 1983년 베이루트 주둔 미 해병대 테러 공격의 배후 인물로 20년 넘게 이스라엘과 미국이 수배해 온 인물이었다.

◆정보원 확보가 비밀공작의 핵심

모사드는 이란을 상대로 자국의 개입 사실을 숨긴 채 증거를 남기지 않은 채 상대국을 공격하거나 요인들을 암살하는 ‘그림자 전쟁’을 진행해 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모사드는 고도로 숙련된 공작 요원들을 운용한다. 그러나 이란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유럽이나 중동 국가보다 훨씬 어렵다. 이란에 잠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모사드는 이 같은 한계를 정보원 확보로 극복하고 있다. 이란 반체제 단체인 인민무자헤딘(MEK)이 대표적이다. 1965년 창설된 MEK는 1979년 친미 팔레비 왕조 붕괴를 도왔지만 호메이니에 의해 추방됐다. MEK는 2002년 이란의 아라크와 나탄즈 핵시설 존재를 처음 폭로했는데, 정보 출처가 모사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란 내에서 차별받는 쿠르드족도 모사드의 포섭 대상이다.

수뇌부를 포섭해 정보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2007년 터키에서 사라진 전 국방부 차관 알리 레자 아스가리는 모사드에 포섭된 인물로 2003년 이후부터 정보를 제공해 왔다. 모사드는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에 그를 피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살해된 파크리자데의 측근들 사이에도 스파이를 심어 핵개발 정보를 빼냈다는 외신보도도 있다.

서방 국가 정보기관과의 협력도 중요한 요소다. 미 CIA는 모사드의 대이란 공작을 지원하는 주요 기관 중 하나다. 실제로 CIA는 2000년대 중반 스위스 공학자 가문인 티너 가문을 통해 결함이 있는 전기공급장치를 이란에 보냈다. 그 결과 나탄즈 핵 시설 원심분리기 50대가 파괴됐다.

현재 이란 핵문제는 복잡한 상황을 맞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이후 이란과의 핵 합의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란 핵과학자들을 암살 표적에 올려놓고 있는 모사드는 비밀공작을 통해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정책을 흔들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파크리자데 암살과 같은 모사드의 ‘그림자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