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신라 공주의 바둑돌

이집트 테베 서쪽 ‘왕들의 계곡’. 이집트 고고학사에 역사적 장면을 남긴 파라오 투탕카멘의 묘는 바로 그곳에 있다. 1922년 묘의 문을 열었다. 횃불 속에 발견된 것은 석관 위에 놓인 장미꽃잎이었다. 왕의 부활을 빌며 무덤의 문을 닫기 직전 17세의 어린 왕비가 놓아둔 꽃이라고 한다. 꽃은 수천년이 넘도록 무덤을 지켰다. C W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 애절함은 신라 서라벌에도 남아 있다. 경주 쪽샘지구. 황남대총·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동쪽에 자리한 고분터다. 그곳 44호 무덤의 흙을 걷어내자 1500년이나 잠들었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땅속 어둠을 헤치고 나온 유물은 2000여 점.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두 쪽을 겹친 모양으로 만든 장식물, 구슬 수백 개로 만든 가슴걸이…. 왕묘에서나 나옴 직한 장식물이다.



무덤 주인의 키는 150㎝. 어린 공주다. 어떤 공주인지는 알 길이 없다. 5세기 후반의 인물로 짐작할 뿐. 다른 무덤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물 하나가 나왔다. 발치에 수북이 쌓인 바둑돌 200여 개. 공주는 바둑을 좋아했던 걸까.

바둑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언제쯤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 21년(475년)의 기록, “도림이 백제로 들어갔다. 이때 백제왕 근개루(개로왕)는 바둑을 좋아했다. 도림이 궐문에서 고하기를, ‘신이 어려서 바둑을 배워 묘경이 들었사온데, 왕께 알려드리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 왕이 불러들여 바둑을 두었더니 과연 국수였다. 드디어 상객으로 받아들여 매우 친근히 대하며, 늦게 만난 것을 한했다.” 도림은 고구려의 간첩이었다. 위례백제의 숨통은 그로 인해 끊어진다.

쪽샘 무덤에 잠든 공주는 그즈음의 신라 공주다. 누가 바둑돌을 놓아둔 걸까. 다시 오지 못할 길을 홀로 떠난 공주. 왕과 왕비는 그런 딸이 외롭지 않기를 빌며 바둑돌을 발치에 놓아둔 걸까. 애틋한 마음은 천년 세월을 넘어 전해진다. “생사로는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잇고 가는가. …” 이승을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는 월명사 ‘제망매가’의 슬픔은 쪽샘 무덤에서 되살아난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