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를 뜻하는 ‘해병대 정신’을 강조하던 해병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해상과 공중에서 적군을 타격하는 입체고속상륙작전이 가능한 공지기동부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갖춘 스마트 마린 등의 개념이 2020년대 이후 해병대의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악으로 깡으로’ 작전을 하던 해병대가 첨단 기술군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혁신의 중심에는 마린온 상륙기동헬기와 공격헬기로 구성된 항공부대가 있다. 마린온은 도입이 진행중이며, 공격헬기는 사업 추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과거와 달리 대구경 함포를 갖춘 군함이 적고, 해병대의 화력이 육군에 비해 부족한 점을 감안하면 해병대가 마린온과 더불어 공격헬기를 추가 확보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런 일이다.
◆국산 개발이냐 미국산 구매냐…경쟁 본격화
2020년대 중반부터 24대가 도입되는 상륙공격헬기 사업은 2015∼2016년 안보경영연구원(SMI)의 1차 선행연구, 2018∼2019년 국방기술품질원의 2차 선행연구를 진행한 상태다.
1차 연구에서는 해외 구매가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나 2차 연구에서는 국내 연구개발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1, 2차 연구 중 어떤 결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국 벨 AH-1Z,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마린온 무장형이 선택될 수 있다.
선행연구 결과가 엇갈리면서 논란이 커지자 방위사업청은 상륙공격헬기 사업분석 연구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내년 3월까지 진행될 연구용역에서 방사청은 비용 및 효과와 전력화 시기 충족 여부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사업분석이 끝나면 무기 획득 방식을 담은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수립된다. 사업방식이 정해질 내년 상반기까지 경쟁업체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한 이유다.
유력 후보인 벨은 9일 화상 기자간담회를 갖고 AH-1Z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빈스 토빈 부사장은 “AH-1Z는 해양 환경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며 “염수 부식의 역효과를 견디면서 선상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트 그린 수석 매니저는 “동맹국들과의 원활한 작전을 고려해 판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헬기 생산이 중단돼도 부품 제작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벨측은 미 해병대에 AH-1Z 189대를 납품했고, 2022년까지 미 해병대 물량을 생산한 뒤 해외 시장을 위한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조지 트라우트만 예비역 미 해병 중장은 AH-1Z의 성능을 설명했다. AH-1Z는 70㎜ 레이저 유도로켓인 첨단정밀타격무기체계(APKWS)를 탑재한다. 최대 16기를 탑재하는 헬파이어 대전차미사일은 합동공대지미사일(JAGM)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AIM-9 미사일로 제한적이나마 공중전도 가능하다.
트라우트만 장군은 “공대공 미사일이 장착된 공격헬기는 고정익 항공기와의 저공 교전에서 밀리지 않는다”면서 “제공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AH-1Z가 근접 공중 지원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KAI는 소형공격헬기(LAH)나 수리온 같은 헬기에 무인 플랫폼을 결합한 유·무인 복합운영체계(MUM-T)를 지난달 대한민국방위산업전(DX KOREA)에 소개했다.
복합운영체계는 유인 헬기 조종사가 무인기를 발사해 조정·통제는 체계로 정찰·수색·구조는 물론 무인기에 내장된 탄두를 활용해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미래형 전투체계다. 지상에 매복한 병력의 대공 사격에 대비, 먼 거리에서 위협을 식별하고 대응할 능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마린온 무장형이 개발된다면 복합전투체계가 탑재될 가능성이 있다.
◆상륙작전 수행 등 요건 충족 기종 필요
적 해안 수십㎞ 밖의 대형수송함에서 이륙한 공격헬기들은 해병대원들을 태운 수송헬기를 호위하면서 적 후방으로 날아가 해병대원들을 침투시킨다.
상륙돌격장갑차가 동시에 해안으로 진격하고,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들도 뒤따라 상륙한다. 후방에 침투한 해병대원들과 해안 상륙부대는 앞뒤로 적을 공격한다. 이것이 현대적인 상륙작전이다. 한국 해병대가 추구하는 공지기동작전과 맥락이 같다.
상륙전은 다른 전투보다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아군의 지원이 제한적이고 모래와 바닷물 등에 의한 장비 고장 가능성도 높다. “해병대용으로 개발된 AH-1Z가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벨도 “사막, 바다, 혹한 등 거친 환경에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하고 도입 비용이나 군수지원 부담도 적다”고 강조한다.
베트남전쟁의 사례도 있다. 베트남에서 미군은 UH-1에 무장을 장착한 기종을 운용했다. 하지만 기존 UH-1보다 최대순항속도가 떨어지면서 지상에서의 대공 사격에 취약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공격헬기인 AH-1이 탄생했다. AH-1Z는 AH-1의 최종 개량형이다.
2000년대 이후 변화된 작전환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적진에서 활동하는 헬기의 가장 큰 위협은 지상군의 대공사격이다.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경보병들은 언뜻 보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 육군 AH-64 공격헬기의 바그다드 인근 공격을 무력화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다.
“AH-64와 동일한 형태의 공격헬기도 작전에 제약을 받는데, 수송헬기를 개조한 병렬식 조종석 헬기가 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 해병대는 UH-1Y 수송헬기와 AH-1Z를 함께 운용한다. 두 기종은 엔진, 로터 시스템, 항법, 소프트웨어, 디스플레이 등 84% 이상의 부품을 같이 사용한다. 이를 통해 정비 효율을 높이고 운영유지 비용과 인력을 절감한다.
한국 해병대도 AH-1Z를 도입하면 한미 해병대 상호운용성 향상 등의 효과가 있으나, 마린온과의 호환성에 따른 정비 비용 및 인력 절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마린온과 마린온 무장형을 함께 쓰면 미 해병대의 UH-1Y, AH-1Z 운용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상에서의 대공사격에 대한 방탄능력이나 생존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된다. 베트남전쟁 당시 헬기의 피격은 대부분 측방이나 하방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측방과 하방 피격률은 대부분의 헬기 기종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수리온 헬기가 14.5㎜ 기관총에 대한 방탄 능력을 갖고 있으며, 헬기 생존성은 먼 거리에서 위협을 탐지하는 것이 방탄능력이나 기체 형상보다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AH-1Z가 더 저렴하다”는 주장도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 회계감사국(GAO) 자료에 따르면, 무기 도입비보다 운영유지비가 3배 더 비싸다. 30년을 운용한다고 가정한다면, 획득비보다 3배 더 많은 비용이 같은 기간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다.
KAI가 LAH를 개발하면서 항공전자장비와 무장체계를 만들었고, 마린온 개발과정에서 헬기의 함정 운용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발비나 도입비는 생각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기품원의 2차 선행연구 과정에서 마린온 무장형은 기총, 미사일 등 무장체계 통합비용이 LAH 개발과정을 통해 검증이 됐다고 판단, 개발비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린온 무장형은 도입 단가가 300억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AH-1Z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마린온에 미사일, 로켓 탑재를 위한 무장장착대를 설치할 경우 최대순항속도가 감소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KAI측은 “그 외 성능은 우수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만회할 기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마린온과 공격헬기의 해병대 도입은 한국군의 기존 상륙작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작점이다.
정신무장’만으로는 현대적인 작전을 펼칠 수 없다. 해병대도 이를 잘 알고 있고, 국가전략기동군과 대테러작전부대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해병대의 혁신이 성공하려면 해병대가 바다에서 육지로 가는 군대가 아닌, ‘날아다니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헬기가 필요하다. ‘정신무장’만으로는 현대적인 작전을 펼칠 수 없다. 해병대의 임무 수행에 적합한 공격헬기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