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략적 유연성 검토… 주한미군 주둔 시대 끝날까 [박수찬의 軍]

미군 장병들이 시가지 전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만8500명. 지난 4일 미 의회가 통과시킨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명시된 주한미군 규모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조항을 2018년부터 국방수권법에 포함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문제로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시사한 데 따른 것이다.

 

표면적으로 주한미군 관련 현안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미는 11일 서울 용산기지 일부 등 12개 주한미군 기지 반환에 합의했다.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에 따라 주한 미군기지 80곳에 대한 반환을 시작한 이후 용산 미군기지 일부가 반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0곳 중 68곳이 반환된 상태에서 나머지 12곳에 대한 반환도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주한미군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상군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한반도 전장 환경이 바뀌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이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으로 이어지면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미군 영구주둔 재검토 필요” 주장 잇따라

 

미국에서는 최근 주한미군 주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권 교체기에 어젠다를 띄워 여론을 환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으나, 언급 주체가 미 행정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나 기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 주한미군 캠프킴 기지 입구가 자물쇠로 잠겨있다. 뉴스1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해군연구소 주최로 열린 온라인 포럼에서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미군의 해외 주둔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영구적 주둔보다 순환적이고 일시적인 주둔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 부대를 영구적으로 포진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심각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미 해군 5함대 본부가 있는 걸프 지역의 바레인, 미군 2만8000명과 장병 가족이 있는 한국을 직접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밀리 의장은 지난해 9월 취임했다.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이양되고 국방부 장관도 바뀌는 전환기에 미 군사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최근 발간한 한미동맹 전략 보고서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비전에 있어 한국이 방어벽 역할을 할 잠재력이 있는데도 한미동맹은 20세기 유산의 수렁에 빠져 있다”며 “미중 군사 경쟁이 더욱 극심한 인도태평양의 다른 지역에 잠재적으로 재배치될 수 있는 (주한미군) 대규모 병력이 묶여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군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 등 주한미군 기지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주둔 병력 규모가 계속 변화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0년 이후 추진했던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맥락이다. 

 

미군 장병들이 경기도 포천 캠프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미동맹 근간 흔들 위험…대비 필요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을 유연하게 배치, 세계 분쟁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했다. 주한미군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지상군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 분쟁에 대응하는 신속기동군 성격으로 바뀌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 문제는 2000년대 중반 한미 관계를 뒤덮은 민감한 이슈였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 각종 현안에 시달리던 노무현 정부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공론화조차 꺼릴 정도로 예민한 사안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맞아 전략적 유연성은 다시 거론되고 있다.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미 동맹의 주요 현안으로 내세울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군 병사가 가상 표적을 향해 기관총을 사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9.19 남북군사합의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로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위험은 낮아졌다. 미국 입장에선 3만명에 가까운 지상군이 한반도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동북아 지역군으로 바꿔 냉전형의 한반도 붙박이 군대가 아닌 ‘날아다니는 군대’로 만들면 미국은 양안 긴장과 아시아 분쟁에 투입할 정예병 3만명을 확보할 수 있다. 재정 문제로 병력 증강이 어려운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움직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만해협에서 중국-대만간 분쟁이나 국지전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이 출동하게 된다. 오산과 평택 일대에 주한미군이 집결해 있으므로 미 본토보다 훨씬 빨리 분쟁지역으로 전개한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의 모습. 뉴스1

이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중국 미사일이 오산 미 7공군사령부나 평택 주한미군사령부에 날아들 수 있다. 개념은 추상적이지만, 그 안에는 심각한 의미가 담겨있는 이유다.

 

한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유연성보다는 한반도 방위에 초점을 맞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면서 기존 동맹 구조를 보완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하고자 한국을 압박한다면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긴장이 완화된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지역분쟁에 개입하는 방안이 실현되지 않으면 지상군 3만명이 한국에 남아 있을 필요성은 줄어든다.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카드로 꺼낼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의 해외 분쟁 개입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군 장병들이 수풀이 우거진 지역에서 경계를 취하며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도 난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조는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영토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한국에 대한 공격에만 투입이 가능하다. 주한미군을 대만해협 등에서 발생할 국지전에 투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서는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국회 의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론화가 불가피하다. 이라크 파병 당시 반대여론이 들끓으면서 거센 정치적 후폭풍이 불었던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공론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미 정부간 교환공문(Exchange of Note)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근간이자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일부 당국자들에게만 맡기면 ‘밀실 합의’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국이 협력한다’는 프레임이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협력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이 동아시아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군이 ‘지원’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미 육군 병사가 탈 구스타프 무반동포를 든 채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과 갈등을 빚는 중국이 한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제2의 한한령을 비롯한 보복을 감행할 위험도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의 유연성을 강화해 세계 분쟁에 신속하게 개입하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전략적 유연성 개념은 이같은 필요성에 의해 등장했다.

 

미국은 꾸준히 군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한국은 방위비분담금 등 현안에 매몰된 채 장기적 관점의 주한미군 성격 변화에 둔감한 모습을 보여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문제를 재정적 시각으로 접근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정치적 차원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주한미군 현안들을 지금부터 점검해 협상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