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축출이 검찰개혁?’… 알맹이 빠진 검찰개혁 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지난 10일 법무부에서 열린 검사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8월 국회의 한 세미나에서 했다고 알려진 발언이다. 윤 총장을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건 정 교수뿐만이 아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은 지금 검사들을 동원해 검찰개혁을 반대하고,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심각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종교계 및 시민사회계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지난 7, 8일 윤 총장을 비판하며 검찰개혁을 위한 시국선언을 했고, 9일에는 부산참여연대 등 520여개 시민단체가 ‘윤 총장은 검찰 안 반개혁적 기득권 세력’이라며 시국 선언에 동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이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을 검찰을 개혁하려는 이들과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세력 간 다툼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은 문재인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검찰개혁의 내용과 윤 총장이 밝혀 온 입장을 비교해 보면 실제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정부 여당이 검찰개혁과 관련, 윤 총장만 축출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접근을 버리고 이제라도 거악척결을 위한 수사체계 확립, 인권수사 보장방안 등 실질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검사징계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가 지난 10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 종료 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은 정말 검찰개혁 반대하나?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추진한 검찰 개혁은 크게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 설치로 요약된다.

 

이 중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져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가 진행되고 각종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에 따른 반성에서 나왔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관련 수사, 2007년 검찰 특별수사팀이 무혐의 처분했다가 지난 10월 징역 17년 유죄가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관련 수사 등은 국민적 비판을 받은 대표적 검찰 수사다. 이에 따라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공수처는 검찰이 검사 비리에 대해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는 등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현실 등을 개선하기 위해 출범됐다. 각종 검사 비리 사건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등 영장 청구가 번번이 검찰에서 기각되는 등 검찰을 견제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두 가지 검찰개혁 사안에 대해 윤 총장은 어떤 입장을 밝혔을까. 인사청문회 발언, 총장 취임 이후 행보를 보면 윤 총장이 두 사안에 반대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검찰의 본질적 기능은 소추(기소)라고 생각한다. 수사지휘는 검경의 커뮤니케이션인데 지휘 개념보다는 상호 협력으로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직접수사는 반부패 대응 역량이 제고 강화된다면 검찰이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고 안 해도 되지 않나”라고 밝혔다.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서도 “부패 대응 역량의 국가적인 총합이 커진다면 동의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에도 윤 총장은 국회가 논의 중인 검찰개혁에 따르겠다는 입장과 함께 오히려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 자체 개혁의 중요성을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실제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검찰개혁 법안 반대 작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취임 이후 국회 논의 중인 검찰개혁 법안에 대한 반대를 전제로 한 논리 개발 등 내부 검토를 중단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윤 총장은 당시 검찰개혁 법안 관련한 설득 작업을 위한 국회의원 개별접촉 금지령도 대검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지난달 대검에서 ‘공판중심형 수사구조 개편 방안’을 시행 중인 일선 검사들과 오찬을 하면서 윤 총장은 “(검찰 수사가) 공판 중심형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적극적인 재판 진술권 보장’, ‘국선변호인 선정’ 등 자체 개혁방안을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윤 총장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상당히 놀랐다”며 “수사만능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공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정권 개혁방안에) 코드를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2차 징계위원회 심의를 하루 앞둔 14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윤 총장이 차량을 타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개혁 위해 윤석열 퇴출 보다 시급한 것은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큰 틀의 검찰개혁에는 동의하지만 각종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을 이유로 개혁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 때도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공수처 설치안에 대해 ‘반부패 대응 역량 강화’라는 전제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오히려 윤 총장의 검찰개혁 입장이 ‘공수표’인지 아닌지를 국회 논의를 통해 명확히 하는 등 검찰개혁의 구체적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내년 1월1일) 시행과 공수처(이르면 1월말) 출범 등을 코앞에 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서는 검찰 특수수사 범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수사 중 인권침해를 막을 방안 등 추가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이 상당하다. 수사권 조정안에 따르면 검찰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 6대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청법 시행령을 통해 마약과 사이버범죄를 포함, 수사가능 범죄가 56개로 늘어나는 등 직접수사 규모가 대폭 줄었다고 보기 힘들다. 여전히 주요 대형수사는 검찰이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정권 초반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더욱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등 오히려 검찰개혁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 시행령이 발표된 후 “대통령령에 검찰 특수수사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며 추가적인 검찰개혁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4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 모습. 연합뉴스

공수처와 관련해서는 공수처장 임명 등과 관련해 정치적 외풍을 어떻게 막을지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공수처를 제어하는 수단으로 야당 비토권이 있었는데 여당이 이를 삭제하면서 정치적 편향성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공수처 설치에 원론적으로 찬성 의견을 밝혔던 윤 총장도 수사 중립성 훼손 이유로 ‘고위공직자 범죄 이첩 조항’에 대해서는 반발한 바 있다.

 

공수처 관련 추가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는 국민적 의견도 많은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여론조사(리얼미터, YTN의뢰)에서는 공수처 설치 찬성이 51.4%, 반대 41.2%로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14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공수처 개정안 처리가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의견이 54.2%로, ‘잘된 일’이라는 의견(39.6%)을 앞섰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에 예속된 검찰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공정한 활동을 하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 검찰개혁의 목표였는데, 추미애 장관은 검찰 인사권을 통해 정부에 부담스러운 수사를 방해하고 윤 총장 라인을 좌천시키는 등 잘못된 개혁방안을 추구했다”면서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 측면에서 예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공수처와 관련해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하는 등 (정부 여당이) 잘못된 방안을 추진한 것을 인식하고 새로 검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