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젊은 소설가 정지돈은 연말이면 많은 작가나 예술인 등이 연례행사처럼 겪는 ‘해촉증명서 소동’의 곤혹스러움을 전했다. 해촉증명서는 과세체계상 개인사업자 성격의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이들이 소득이 일회적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다. “여전히 해촉증명서가 뭔지 모르는 곳도 적지 않지요. 더구나 담당자가 없을 경우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에게 청구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의 올해 건강보험료는 월 20만원 안팎. 지난해의 18만원보다 늘어난 액수로, 부양가족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봉 7000만원 안팎의 임금 노동자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해 30개 정도이던 것이 올해 10∼20개로 준 건 다행이지만,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이르면 위로조차 보낼 수 없다.
바빠서 아직 서류를 떼지 못했다는 정 작가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양식이 있어 많이 좋아졌지만, 서류를 준비하고 확인하는 데 최소 하루 이상 걸린다”고 했다. ‘젊은작가상’(2015년)과 ‘문지문학상’(2016년) 등을 수상한 촉망 받는 작가가 감내해야 할 불편과 곤혹스러움이 눈에 선하다. “사회가 작가와 예술인을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게 아닌가, 우리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아닌가, 아쉬우면 취직하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작가들의 연말 해촉증명서 소동은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로 지적된다. 매년 11월 건보는 그달부터 다음해에 낼 건강보험료를 산정해 청구서를 보내는데, 기준은 5월 국세청에 신고한 전년도 소득. 1년 전 소득 기준으로 4대 보험료가 부과되다보니 일회성 또는 단기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많은 작가나 예술인의 경우 쉬고 있어도 일회성 소득이 ‘지속 소득’으로 잡혀 높은 건보료가 부과될 수밖에 없다. 건보료를 현실적으로 재산정받기 위해선 해괴한 해촉증명서를 내야 하는 구조다.
많은 작가들은 연말이면 해촉증명서를 위해 지난해 수입이 생겼던 모든 곳에 전화를 돌리고 또 돌린다. 이를 해학적으로 꼬집은 중견 소설가 공선옥의 최근 칼럼 ‘오후 3시의 대치’는 얼마나 아픈가. “거의 목구멍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똑같은 말을, 그러니까, 건강보험공단에서 말이, 내가 귀 회사 잡지에 글을 쓰고 받은 돈을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간주하야, 보험료를… 이 대목쯤이면 벌써, 한나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올라가면서, 급격히 자제력을 잃게 되어 있는데….”
정 작가나 공 작가만의 일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예술인실태조사’를 들여다보면 작가나 예술가 10명 가운데 7명꼴로 월 수입이 100만원을 밑돈다고 하니 거의 대다수 작가나 예술인들이 해촉증명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건보는 우선 해촉증명서만을 건보료 재산정 근거로 하는 업무처리지침 등을 서둘러 고쳐야 할 것이다. 건보 편의가 아닌 시민 편의를 생각한다면 여러 방법이 있을 터. 국회도 건강보험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 우리 역시 이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야 한다.
정 작가는 이미 지난해 발표한 글 ‘(진정한) 작가되기’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프리랜서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아쉬우면 취직해라. 너는 프리랜서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출퇴근도 없는 자유를 누리지 않냐. 그러니 감당해라. 정말… 이러기야?” 활자가 추위와 함께 망막으로 난입했고, 나는 1년 만에 읽는 과문함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