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라는 행위는 인류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걷는 자들은 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걸을 때 미지의 것을 취하고, 제 상상을 한껏 넓히고 인식의 부피를 키운다. 걷기와 산책은 다르다. 관광, 쇼핑, 거리 시위, 도망은 걷기 범주에 들지만 산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산책은 미학적 양식으로 다듬어진 걷기다. 나는 날마다 산책에 나선다. 날이 궂거나 화창하거나 집 밖을 걷는 습관은 내 일상의 일부다.
탈레스는 기원전 585년 전 소아시아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예측하고, 수학에서 ‘탈레스의 정리’를 공식화한 철학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인류 ‘최초의 철학자’로 꼽았다. 그는 산책 중 딴 생각에 열중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졌다. 철학자에게 사유의 행로와 걸음의 궤적은 겹쳐지는 바가 있다. 산책의 매혹에 빠진 것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몽테뉴, 칸트, 니체 같은 철학자가 공유한 경험이다. 칸트는 오후 다섯 시 정각이면 산책에 나선 걸로 유명하다. 그는 규칙을 지켜 산책을 했는데, 그 규칙을 어긴 것은 딱 두 번뿐이다. 첫 번째는 1762년 루소가 ‘에밀’을 내놨을 때 그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 산책을 건너뛰었다. 두 번째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다. 그는 큰 충격으로 산책 나가는 걸 깜빡 잊었다. 그 두 경우를 빼고는 칸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섯 시 정각이면 산책에 나섰다.
니체 역시 산책 마니아다. ‘영겁회귀’의 철학을 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산책이 준 보상이다. 니체는 1881년 어느 날, 실바플라나 호수를 끼고 있는 숲속을 걷다가 거대한 바위 옆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 순간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영감이 몸을 관통했다고 썼다. 그는 날마다 산책에 나서서 영감을 가다듬으며 책을 써나갔다. “오전에는 소나무 숲을 지나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초알리 방향으로 난 아름다운 남쪽 길을 오르곤 했다. 오후에는 건강상태가 좋을 때마다 산타마르게리타에서 포르토피노의 뒤까지 이르는 만 전체를 돌아다녔다.” 약골에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니체에게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였다. 그는 산책을 정신의 영양 섭취, 자기 자신의 휴양을 취하는 방식으로 삼았다. 아마도 산책이 없었다면 ‘차라투스트라’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