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라가 아무렇게나 감은 듯한 고무벨트 뭉치 9개를 벽에 걸었다. 너무 밋밋했던지 그중 하나에선 네온불빛이 새어 나오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러운 재료로 된 벨트 뭉치들이 바닥을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 세라는 이 작품에서 계산된 구성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움직임과 형태를 보여 주려 했다. 종전 조각품의 딱딱한 물체 대신 부드러운 물체를 사용했고, 엄격한 형식보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다. 계산적이며 규격화된 작품이 차갑고 비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데 반발했고, 부드럽고 우연적인 형태가 풍기는 여유와 인간적인 따스함도 느끼게 했다.
특징은 또 있다. 정지된 순간에 고정시킨 종전 작품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프로세스 아트’로 불린다.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이란 뜻인데, 세라의 다른 작품도 있다. 전시장 귀퉁이에 있는 물건들을 가운데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다 옮긴 후 가운데 모은 물건들을 다시 귀퉁이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하는 식이다. 작품 뒤에 숨었던 작가가 예술행위 주체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작업과정과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면서 작가의 신체도 작품의 구성요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