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사례는 ‘데이트폭력(연인이나 연인 사이였던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사회의 비뚤어진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데이트폭력은 과거 연인 간의 사랑싸움 정도로 여겨졌지만, ‘데이트폭력도 엄연한 폭력’이란 공감대가 조성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신고율도 늘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수사·사법기관의 태도는 여전히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이란 인식에서 많이 나아가지 못한 모습이다. 1년에 수십명이 연인의 폭력으로 사망하지만 관련 법조차 제대로 없다.
◆데이트폭력 신고 3년 만에 46% 급증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데이트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한다.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과 결혼 여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폭력이지만,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질 때가 많다. 피해자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가해자와의 관계를 끝낼 수 있다는 편견도 많다.
정혜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여성정책연구팀장은 “데이트폭력은 후유증이 크고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관계란 이유로 사소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가 상대방의 폭력을 수용하는 정도도 높다”고 설명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처 입법조사관은 “미디어 등을 통해 폭력을 낭만으로 포장했던 역사가 길고, 주변에서 ‘널 얼마나 사랑하면 그랬겠냐’는 식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환경에서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고 폭력을 견디며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사례 중 살인은 10명, 살인미수는 25명에 달했다. 올해는 11월까지 14명이 살해당했고 살인미수는 15명이었다. 2012∼2017년 데이트폭력 관련 강력 범죄로 사망한 사람은 467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 인식도 여전
피해자들은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 정도로 경시하는 수사·사법기관의 태도에 고통받는다. A씨 사례처럼 사건에 적극 대처해야 할 경찰조차 단순히 ‘연인 간의 일’이라고 치부해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늘지만 형사입건 비율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형사입건 비율은 2016년 89.3%에서 2019년 49.4%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11월 기준 47.1%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수사기관만을 탓하기는 어렵다. 데이트폭력에 적극 개입하도록 하는 근거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보호 관련 법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6건의 관련 법안이 모두 계류 끝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논의가 미진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은 가정폭력처벌특례법으로 피해자를 보호하지만 혼인신고가 안 된 연인관계에서 피해자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제도는 형법에 없다”며 “가정폭력처벌법을 가정으로 한정짓지 않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방지법’이나 ‘파트너 폭력 방지법’ 등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