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폭행’인 거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이니까 황당하죠.”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 손님을 기다리며 잠시 정차 중이던 택시기사 장모(54)씨에게 최근 논란이 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해 묻자 한숨 소리부터 나왔다.
이 차관은 변호인 신분이던 지난달 초 술을 마신 뒤 택시에서 잠이 들었고, 목적지에 도착해 자신을 깨우던 택시기사의 뒷덜미를 잡고 화를 내는 등 행패를 부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 10년이 됐다는 장씨에게 이 사건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아주 낯익다. 장씨 역시 취객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밀쳐 경찰서에 간 경험이 있다. 그냥 ‘툭툭’ 치거나 욕설을 하는 취객들은 ‘신고하기도 귀찮아’ 그냥 보낸 적도 많다고 한다.
그는 “취객이 행패를 부리는 일이 많다 보니 어지간한 사건은 화도 안 날 정도”라면서도 이 차관에 사건 뉴스를 보다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논란 양상이 ‘폭행 자체’보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적용 대상인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당시 택시가 정차 중이었다는 이유로 이 차관에게 단순 폭행 혐의를 적용한 뒤 피해자(택시기사)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자 사건을 자체 종결했다. 이를 두고 정차 중인 택시도 ‘운행 중’으로 보고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하는 특가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가법 적용 대상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장씨는 “어쨌든 폭행한 건 맞지 않냐”며 “특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면 문제없다는 식인데 택시기사 입장에서 아주 불쾌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만난 다른 택시기사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본질인 ‘택시기사 폭행’은 정작 논란에서 가려져 있다고 꼬집었다. 경력 12년의 택시기사 김모(42)씨는 “다른 부처도 아니고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낸 변호사였으면 누구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그런 사람조차 택시기사를 폭행한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차관의 ‘사과’를 보고도 허탈했다고 했다. 이 차관은 전날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도 “(혐의 유무는) 경찰에서 검토해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미 잘못했으면서 무슨 시시비비가 가려진다는 건지 모르겠다. 특가법 적용 대상만 아니면 되는 거냐”고 지적했다. 이어 “택시기사를 폭행해도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건 ‘택시기사 단순 폭행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신호를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많은 택시기사가 승객의 폭행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2018년 버스·택시기사 등을 폭행해 검거된 사람은 8538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8명이 폭행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 택시기사는 “사건의 본질은 택시기사와 하층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교롭게 차관으로 가서 일이 커진 것뿐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문제”라며 “노동자를 무시하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 폭력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도 “폭력은 반사회적 행위이고, 형법으로 명백히 규정된 범죄 행위”라며 “당시는 공직자 신분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전까지도 고위공직자였고 현재는 더 높은 직에 오른 만큼 고위공직자로서의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차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택시기사는 최초 경찰 진술에서 “(이 차관) 자택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운행 중인 상태에서 목덜미를 잡혔다”고 밝혔으나 사흘 뒤 돌연 “정차한 상태에서 멱살을 잡혔다”고 말을 바꾸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은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 등이 이 차관을 특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김유나·이종민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