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려 삭제’ 서기관 등 월성1호기 자료 삭제 가담 공무원 3명 기소

2명 구속 기소·1명 불구속 기소… 백운규 전 장관 등 소환 일정은 불투명
지난 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대량 삭제하거나 이에 관여해 구속됐던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을 포함한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23일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고발 사건 관련해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감사원법 위반·방실침입 혐의로 국장급 A(53)씨 등 산업부 공무원 2명을 구속 기소하고, 다른 국장급 공무원 C(50)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핵심 측근들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관련해 백 전 장관의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A씨는 원전 조기폐쇄 등 안건을 갖고 2017~2018년 3개월 사이 2차례 청와대를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앞서 감사원과 검찰이 감사원 감사 전 어떻게 알고 자료 444건을 삭제했느냐는 추궁에 “나도 내가 신 내림을 받은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알려진 서기관 B씨는 지난 4일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다 재판을 받게 됐다. B씨는 감사원과 검찰에 “당시 과장(C씨)이 주말에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밤늦게 급한 마음에 그랬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당초 검찰은 이들 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대전지법은 “혐의 일부를 시인하고 도주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C씨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지난해 11월쯤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월성1호기. 연합뉴스

구속 기소된 A씨 등은 같은 해 12월2일 오전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전날(일요일) 오후 11시쯤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감사원에서 삭제했다고 밝힌 자료 숫자 444건보다 86건 늘어난 것이다.

 

삭제된 문건 중에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대다수는 디지털 포렌식을 거쳐 복원했지만, 일부 자료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등 자료를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월성 원전 운영과 폐쇄 결정에 직·간접 관련이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 임직원을 불러 조사했다. 월성 원전 조기폐쇄 시기를 결정한 주체가 누구인지, 산업부가 한수원으로 결정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관여 여부 등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은 자료 삭제 이외의 범죄 혐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분류되는 백 전 장관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움직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사건을 지휘해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처분으로 수사 동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대전지검은 “채 사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 일정을 좁혔다”면서도 정확한 소환 시점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