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VR(가상현실) 게임장에 들어가는 수수료로 회사를 운영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젠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25일 경기도에서 VR게임 개발업체를 운영 중인 김모씨는 코로나19로 수입이 급감해 최근 몇몇 개발자들을 해고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글로벌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VR게임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상 국내 VR관련 정부 지원이나 기업의 투자는 국방과 의료 같은 콘텐츠와 VR기기 및 게임장에 치중돼 있다”며 “결국 시장을 강타할 게임 등 VR 콘텐츠 개발사들은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초기 VR 콘텐츠를 비롯한 실감형 콘텐츠에 대한 정부 지원이 테마파크, 체험존과 같이 일회성 체험관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 결과 2017~2018년 전국 약 300여개의 VR 게임장이 생겨났지만 2019년 180여개에서 현재 전국 VR 게임장은 80개 미만으로 추산된다. 기기 보급이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대중과의 접점 역할을 해오던 VR 게임장의 감소로 VR 게임장에 콘텐츠를 공급할 VR 콘텐츠 개발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가상현실 게임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연간 매출액 10억원 미만인 VR 관련 회사가 68.7%로 나타났고 이 중 ‘1억원 이상 3억원 미만’이 2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00억원 이상 매출 기업은 전체 조사대상 중 6.3%로 4개 업체에 불과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VR 게임장 산업의 악화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2019 VR 게임사업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콘텐츠진흥원이 전국 65개 VR 게임장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의 55.4%(36개)는 향후 VR 게임장 산업이 ‘악화될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정부는 2023년까지 실감콘텐츠 육성에 1조3000억원 규모를 투자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또한 업계에서는 성과를 나타낼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산업의 조기성장을 위해서는 ‘C-P-N-D’(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의 유기적 성장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디바이스에만 집중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감형 콘텐츠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 체험시설 중심의 단발성 수익모델은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VR 하드웨어 시장이 죽으면서 이를 활용할 소프트웨어인 콘텐츠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세계 최초 상용화된 5G 서비스로 VR·AR 등 실감형 콘텐츠를 버퍼링 없이 즐길 환경이 구축되면 초실감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실감 라이프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5G의 상용화에도 VR 시장에는 LTE(롱텀에볼루션)와 차별화되는 킬러 콘텐츠의 부재로 서비스 가입자가 이탈하는 등 난관에 봉착해 있다. 유통구조도 문제다. 현재 실감형 콘텐츠를 유통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스팀이 있지만 PC 게임을 위주로 유통하고 있다 보니 VR 게임 및 콘텐츠의 유통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에도 전체 게임이용률 대비 VR 게임 이용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게임이용자 1995명 중 VR 게임을 이용해본 비율은 8.9%(178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모바일 게임(90%, 1780명)이나 PC 게임(64.1%, 1278명)을 이용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독점 타이틀로 시장 1위를 지켜내고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VR 시장을 비교하곤 한다. 소니는 아성에 도전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를 독점 타이틀로 막아냈다. 라스트오브어스 시리즈와 언차티드 시리즈, 갓오브워 등 소니 산하 개발사를 통해 만들어낸 독점작이 이뤄낸 결과다. 시장에서는 독점작을 하기 위해 플레이스테이션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결국 제대로 된 킬러 콘텐츠만이 VR 하드웨어 시장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 불확실성 해소와 비즈니스 모델 확립을 통한 명확한 수익 구조와 영상, 게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통하여 성장을 견인한다면 민간 투자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개발사의 게임 등 콘텐츠가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