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겠다고 하고서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제가 자신이 없었거나 아니면 시야를 이만큼 확장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나 도덕 윤리, 거대 서사로 확장하는 것에 거부감도 있었거든요.”
친일파의 대저택 ‘벽수산장’을 모티브로 한 신작 ‘영원한 유산’(문학동네·사진)이 작품 세계를 사회와 역사로 확장한 것 같다고 평하자, 소설가 심윤경은 묻어뒀던 산고를 토로했다. 그를 한계까지 내몬, 8년의 그것이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상에 향한 질문이 하나둘 쌓여 가면서 그 질문과 ‘벽수산장’을 연결할 고리를 찾아낸 것이죠. 세상과 저의 관계를 생각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벽수산장이라고 하는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8년 정도 궁리하다가 방향을 잡고 막 의욕적으로 하려는 순간, 코로나가 닥쳐왔어요. 공간적인 취재가 중요해 ‘낙선재’를 보고 마지막 왕족의 생활을 감각하고 싶었는데, 닫혀버렸죠. 감각이 제한되고 불안이 엄습해 2개월간 못 쓰겠더라고요.”
작품의 성격상 아무래도 공간과 1960년대의 재현이 관건이었다. 더구나 60년대에 대한 감각이 1972년생인 그에겐 없었다. “(19)50년대는 전후 10년이고 70년대는 복구의 시작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60년대는 분명치 않더라고요. 70년대만 해도 감각이 있지만, 60년대는 그냥 …의 느낌이었죠. 작품을 쓸 때 정서적인 포지션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 그게 비어있었던 거죠. 책과 부모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는 ‘문학의 자장’에서 좀 멀다고 느껴지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뒤에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왜 주변의 반대에도 문학판으로 돌진해 들어왔을까.
“(과학계에) 발을 담가봤는데, ‘이과인 줄 알았는데 문과였어요’의 전형적인 케이스였어요. 전 과학책을 좋아했던 거죠. 석사 과정이 끝날 무렵 ‘나의 즐거움은 과학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주변의 반대에도 ‘하면 되지 않겠어’라는 20대 특유의 낙관으로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겁이 없었죠(웃음).”
심 작가는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문단에 데뷔했고, 2004년엔 ‘달의 제단’을 펴내 무영문학상을 받았다. ‘이현의 연애’(2006), ‘서라벌의 사람들’(2008)을 쓴 뒤 동화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를 냈다. 연작 ‘사랑이 달리다’, ‘사랑이 채우다’(2013)를 펴내며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에너지를 소진했다”고 토로하는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사실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요. ‘내가 작가인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환호에서 시작했지만, 제 스스로 확신을 못했습니다. 일종의 ‘글쓰기의 조울증’을 겪었어요. 5년 동안 아무것도 못 쓰겠더라고요. 개인적인 우울의 시기가 찾아오고, 미뤄둔 삶의 질문까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힘든 시간이었지요.”
작가는 6년의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가진 뒤 2019년 ‘설이’로 겨우 넘어섰고, 최근 ‘영원한 유산’을 쓰며 확실하게 돌아왔다. “‘쓸 수 있을까’, 이제는 이런 질문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해요. 쓰는 것 자체가 저에겐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니까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정직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대 이즘이나 거대 서사가 아닌, 한 개인이 자식 키우고 먹고 살아가는 욕망까지 기록하는 작품 활동을 했다”며 고 박완서 선생이 롤 모델이라고 고백했다.
“어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 이야기가 아닌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개인의 사악함보다는 소시민으로서의 한계에 정직하려 합니다. 제 자신에 성실하고 정직했다고 평가받고 기록됐으면 좋겠어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