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유럽연합(EU) 간에 7년을 끌어온 투자협정의 연내 체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EU 등 핵심 동맹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상황에서 중국이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29일 로이터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EU 27개 회원국이 중국과의 투자협정을 승인했으며 7년간 이어진 협상이 이르면 48시간 이내에 타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양측의 공동 노력 하에 근래 협상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으며 전망이 밝다”면서 “협정이 조속히 결실을 거둬 무역협력의 제도적 틀을 굳건히 하고 양측 기업과 인민에 이익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협정이 체결되면 EU 기업들은 중국에서 미국 기업보다 유리한 투자환경을 누릴 전망이다. 이번 협정은 EU가 중국에서 투자 혜택을 더 누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SCMP는 협상 내용을 잘 아는 인사의 말을 인용해 투자협정이 체결되면 EU 기업이 중국의 통신, 금융, 전기차 등 분야에서 전례 없는 시장 접근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신 중국은 EU 에너지 시장 접근권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EU 간 투자협정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던 노동기준 문제에서도 중국 측이 과거보다 진전된 입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EU 회원국들은 그동안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와 홍콩 민주화운동 탄압 등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중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왔다. 다만 중국이 EU에 제시한 ‘진전된 입장’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는 ‘외교적으로 미국의 중국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중국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이란 평가를 하고 있다.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이크 설리번은 지난 22일 트위터에 ‘중국과 EU 간 투자협정 연내 체결 목표’ 기사를 링크하고 우려를 표하는 등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중국에 맞서고자 유럽 등과 강력한 연대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이번 협상은 중국의 외교적 숨통이 트이게 해준 셈이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을 포함한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적 연계망을 강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달 한국과 일본, 호주를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아르셉)을 체결한 데 이어 EU와도 경제적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8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진짜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견고한 협력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중·러 관계는 강력한 내성과 동력, 독립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 국제적 풍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길 원한다”고 힘줘 말했다.
다만 EU 국가들이 합의해 중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하더라도 반중 정서가 강한 EU 의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하르트 뷔티코퍼 EU의회 의원은 “우리가 정말 시진핑을 도와야 하느냐”며 “중국과 협정을 서둘러 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