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로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1월20일) 정확히 347일을 맞이하는 가운데 어쩌면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을 2020년을 우리는 마무리하게 됐다.
그동안 1년 가까이 우리 일상은 가깝게는 지난해 12월, 멀게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손 씻기 등 철저한 개인위생 지키기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사회는 비대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겨울 우리를 덮쳐온 코로나19는 봄꽃이 피어도 떠나질 않았고, 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더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를 배려하며 국민들이 마스크를 쓰는 사이 계절은 바뀌어 단풍이 찾아왔지만, 예년이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관광 명소는 적막하기만 했다.
세월이 한 바퀴를 돌아 코로나19가 고개 들었던 겨울의 한복판에 우리가 머무르는 사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맹위를 떨친 코로나19는 오히려 변이 바이러스까지 생겨나면서 앞으로 또 다른 싸움을 인류에 예고한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 1년을 곱씹으며, 올해 초 설 연휴 집안 어른들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그날이 온 가족이 함께 모인 ‘마지막 기회’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추석에는 아예 우리보고 먼저 오지 말라고 말씀하시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 구매를 위해 판매처에 길게 늘어선 줄은 우리에게 흡사 재난영화와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고, 그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에 많은 이들은 힘겨워했다.
주민들에게 나눠준 마스크를 누군가 훔쳐 가는 바람에 우편함 등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았고, 실제로 이웃의 마스크를 훔친 이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은 누리꾼들을 씁쓸하게 했다.
하지만 무기력한 일상이 익숙해지는 속에서도 함께 코로나19를 이겨내자며 이어진 따뜻한 응원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했던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자가격리자의 수칙 엄수를 당부한 긴급안내문자에 ‘힘내요 대구’라는 메시지가 담긴 사연이 공개돼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서 주요 거점 병원에서는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느라 땀 뒤범벅이 된 의료진도 계속해서 포착됐다.
그러자 전국 곳곳에서는 의료진이 근무 중 쉽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사용하지 않는 의류를 기부하는 행렬이 이어져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새로운 제자들을 맞이할 준비로 설렘 가득했던 선생님들도 난생처음 마주하는 ‘온라인 비대면 수업’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신학기 상담은커녕 제자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고,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담당 교사들은 메신저 상담으로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많은 노력을 들였다.
전례 없는 ‘코로나 수능’과 맞서 싸워야 했던 수험생들에게는 따뜻한 격려도 쏟아졌다.
대다수 국민이 힘을 합쳐 코로나19를 극복하고자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갔지만, 일부 클럽 등에서는 ‘난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마스크 쓰지 않고 춤추는 사람들이 포착돼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이는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구급차에 탔던 확진자, 귀국 후 자가격리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 이와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한 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보낸 대학생, 특히 신입생들에게 올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캠퍼스의 봄내음과 벚꽃, 푸른 잔디밭을 느낄 기회조차 없이 1학기가 흘러갔고, 상황 개선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안갯속을 걷는 듯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어려움 겪는 청각장애인들의 사연도 공개됐다.
손과 표정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게 ‘수어(手語)’인데 마스크로 입을 가리다 보니, 방송의 수어통역사나 학교 등에서 만나는 교사 등의 입 모양을 볼 수 없어서,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에 봉사단체 등이 보건용 마스크(KF94) 일부를 잘라 입을 볼 수 있는 ‘투명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했는데,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민간 차원의 봉사가 많아서 앞으로도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물러났다가 다시 해변을 덮쳐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코로나19가 우리의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동안 조금씩 전해지는 백신 관련 소식이 그나마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내리고 있다.
자신이 무증상 감염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선제검사를 받고자 임시선별검사소에 이어지는 수많은 시민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년에는 어쩌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품게 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