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섞은 쌀밥과 무와 계란이 들어간 소고깃국, 꿩탕, 숯불고기, 닭구이, 콩나물무침….’
1884년 11월 10일 전라감영을 방문한 주한미국공사관 해군무관 조지 클레이턴 포크(1856~1893)는 관찰사 김성근(1839∼1919)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다음 날 오전 10시 풍패지관(豊沛之館·보물 제583호)에서 받은 아침 밥상을 이같이 소개했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지금의 전북과 전남, 제주 일대 56개 군·현을 관할하던 전라도 최고 지방통치 행정기구로 정유재란 등 전란을 거치며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 한국전쟁을 끝으로 불타 사라졌지만, 지난해 10월 전주시가 복원했다. 포크는 당시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전라감영을 방문하기 6개월 전 주한미국공사관에 임명됐다.
포크는 원반 위에 차려진 밥, 국, 반찬 등 17가지 음식의 종류와 위치를 그림으로 그리고 번호를 매겨 여행일기에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이를 ‘가슴까지 차오르는 엄청난 밥상’이라고 극찬했다.
포크의 기록은 미 국무부 명에 따라 조선의 경제적 가치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전주의 음식문화와 조리법을 알 수 있게 기록한 최고(最古)·최초 문헌이자 타지역 감영에서 발견되지 않은 감영의 접대·연희 상차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지금까지 전주의 음식은 세종실록지리지 등 다양한 문헌과 ‘미암일기’(유희준), ‘호남일기’(이석표, 이상황), ‘완영일록’(서유구) 등 전라감사들이 기록한 일지에 등장하지만 이처럼 식자재와 조리법 등을 유추할 수 있게 자세히 기록한 것은 유일하다.
포크는 다양한 상차림과 연희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했다. 그는 주안상을 받은 자리에서 ‘기생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가늘고 큰 목소리로 ‘다 잡수소!’라고 외치자 다른 남자들 세 명이 복창했다. 작은 접시에 음식이 최고 1피트(약 30㎝)가량 높이 쌓였고, 접시마다 열 사람이 먹을 만큼 많았다’라고 적었다.
그는 전라감영에서 받은 융성한 대접에 대해 “모든 소리와 유흥은 중국에서 본 어떤 것보다 웅장했다. 실로 환상적인 날이다. 감영은 작은 왕궁이다”라고 감탄했다. 그의 일기는 2008년 미국의 한 교수가 책으로 펴내 뒤늦게 널리 알려졌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인 전북 전주시는 포크의 일기를 토대로 전라감영 복원사업에 발맞춰 관찰사 밥상을 복원했다고 4일 밝혔다. 관찰사 밥상은 조선시대 전라감영 관찰사(종2품)의 상차림을 기본으로 전주 식자재와 조리법을 활용하되, 현대 식문화까지 고려해 조선시대 수라상(12첩)보다 한 단계 낮은 9첩 반상(일상적 상차림)2종과 5첩 반상 1종과 국밥 2종, 다과 1종, 도시락 1종 등 총 7종이다. 9첩 반상은 밥, 국, 김치, 장류, 찌개 등 7종 11가지 기본 음식과 나물, 구이, 젓갈 등으로 구성하고 전주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했다.
조선시대 관찰사는 왕명을 지방 수령에게 전달하고 수령을 평가하는 왕권 대행자이자 지방을 규찰(糾察)하는 최고 권력자였다. 그만큼 감영에서는 800여명이나 되는 영리가 근무했고, 외부 손님과 고을 백성 등이 수시로 찾아 영주(주방)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음식을 챙겼다.
감영에서 벌이는 잔치도 많아 칠월연(고종황제 탄생일)엔 당대 판소리 명창들이 밤 늦게까지 열창했고 경연이 끝나면 국수, 떡, 유과 등을 나눠줬다. 동짓날엔 판소리 장원을 뽑는 대사습놀이가 벌어지는 동안에는 팥죽을 한 그릇씩을 맛보게 했다. 이처럼 음식은 왕실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자 상물림을 통해 통치 수단이 됐고, 전주 한정식의 뿌리가 됐다.
전주시는 이번에 개발한 관찰사 밥상을 유튜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고 지역 내 한정식집 등에 레시피를 전수해 관광객 등이 메뉴별로 맛볼 수 있도록 상품화하기로 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라감사 밥상은 현재 전주 한정식의 원형이자 음식문화 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며 “136년 전 ‘신비한 나라 조선’에 온 외국인에게 전라감사가 내어준 상차림처럼 관찰사 밥상을 통해 전주의 음식문화와 인심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