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뇌가 인공신경망과 달리 ‘숫자 감각’(number sense)을 타고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의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카이스트(KAIST) 바이오·뇌공학과 백세범(사진) 교수팀은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경망에서 숫자 같은 고등의 인지 기능이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신경망에서 상위 인지 기능을 생성시키려면 충분한 데이터 학습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상식과 상반되는 결과여서 주목된다.
주어진 시각 정보에서 물체의 수량을 파악하는 능력인 숫자 감각은 뇌 신경망의 고등 인지 기능 중 하나이다. AI 같은 인공신경망에서 인간의 신경을 모사한 기계학습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숫자 감각을 발생시키려면 어떤 학습 과정이 필요한지에 대부분 집중돼 있다.
반면 동물의 뇌는 전혀 학습하지 않은 생애 초기에도 인공신경망과 달리 숫자 감각을 갖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 차이점은 생물학적 지능의 발생과 진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나 어떻게 자발적으로 발생하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이에 연구팀은 신경망의 초기 상태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 특성이 다양한 인지 기능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동물의 뇌 구조를 모사한 인공신경망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등 인지 기능이 최초로 발생하는 상황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모든 연결 가중치가 무작위인 초기화된 상태에서, 학습 없이도 신경세포가 특정 숫자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수량 선택성’이 자발적으로 생성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수량 선택적 특징은 실제 동물의 뇌에서 발견되는 ‘베버 페히너의 법칙’(자극의 강도와 인간의 감각 사이의 상대적 관계를 나타내는 심리 물리학적 법칙)을 동일하게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 교수는 “대부분의 뇌 기능이 학습과 훈련에 의해 생긴다는 기존의 시각과 달리 선천적이고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뇌신경인지 지능의 기원에 대한 이해에 전환점을 가져와 새로운 인공지능 구현 원리를 찾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김광수 석·박사통합과정, 장재선 박사가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저명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지난 1일 자에 실렸다.
대전=임정재 기자 jjim6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