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바닥 위에 축 늘어진 사자, 좁은 우리에 갇혀 외롭게 서 있는 코끼리, 철창 안에서 시시각각 사람의 시선에 노출된 원숭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동물원 모습이다. 1세대 감옥형 동물원이라 불리는, 좁은 면적의 콘크리트 재질 바닥에 동물을 방치하고 은신처 없이 창살만 세운 18∼19세기 동물원은 20세기 중반부터 서구 선진국에서 점진적으로 철거됐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실내동물원까지 크게 증가하며 많은 동물원은 사람들의 친숙한 오락시설이 됐지만, 동물들에게는 더 좁은 갑갑한 족쇄일 뿐이다.
◆대형동물원조차 갖추지 못한 동물복지… 동물원, 허가제 전환
이제 사업자 개인에 맡긴 신규 등록제 동물원은 사라질 전망이다. 허가제로 전환하고 종별 서식공간과 필수 관리인력 등을 규정한다. 습성을 고려해 서식환경을 개선하고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실내에서 사육하면 스트레스를 특히 많이 받는 맹수류는 이제 야외방사장을 갖춘 동물원에서만 보유할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야외방사장이 없는 동물원에 전시된 호랑이, 사자만 5개소에 각각 7개체, 11개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존에 동물원이 어떻게 관리돼야 한다는 정보가 없어 ‘호랑이, 사자를 지하에 관리한다’고 해도 넘어갔다”며 “동물복지를 향상하고 많은 맹수류가 실내에 갇히는 일을 앞으로 방지하려고 동물원 허가기준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오랑우탄, 침팬지, 코끼리 등 특별하게 보호·관리해야 하는 동물종을 대상으로 별도 지침도 마련된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로 서식환경을 예민하게 관리해야 하는 종이 해당한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공포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 정신적 건강, 습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 유발이 종합적으로 동물복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코끼리는 무리생활을 하는 등의 생태적 습성상 동물원에서 적절한 자연생태를 구현하기 어렵다. 그 영향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져 정형행동은 물론 번식력 저하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환경부가 외부 전문가를 통해 2019년 국내 11개 동물원을 현장 평가한 결과 비교적 시설을 잘 갖춘 대형동물원도 5점 만점에 동물복지는 3.5점, 서식환경은 3.4점을 받았다. 공중보건과 안전 등 모든 척도의 평균은 3.7점으로 좋음(4점)에도 미치지 못한 보통 수준이었다. 해외 동물원에 비교하면 면적은 좁고 야외방사장이 적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동물원을 허가제로 바꾸도록 법을 개정하고 특별보호종 대상 별도 관리지침도 수립할 계획이다. 동물원 허가 여부는 국립생태원, 국립생물자원관, 야생동물질병관리원 인력과 동물원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전문검사관을 지정해 이들이 판단한다.
◆무분별한 야생동물 카페 막고 개인 거래 가능한 백색목록 지정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인수공통감염병 경각심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동물원 내 먹이주기, 만지기 등 체험활동을 줄이는 동시에 동물원 외의 공간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차차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와의 견해차도 코로나19 유행 후 크게 줄었다. 해당 내용을 담은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은 국회에 대기 중이다.
동물원 규모는 갖추지 않았으나 라쿤, 미어캣, 파충류 등 야생동물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주는 ‘카페’로 운영되는 곳은 지난해 5월 기준 47곳이다. 일부 매장은 일반음식점이나 휴게음식점, 서비스업으로 신고돼있기도 했다. 특히 라쿤은 지난해 5월 인수공통감염병인 광견병 주요 매개체임에도 질병 관리가 되지 않은 채 관람객 체험에 활용돼 생태계 위해우려종으로 지정됐다. 이런 시설이 보유한 라쿤은 50∼60여 개체로 추정된다.
환경부는 야생동물 카페 운영을 금지할 경우 유기될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공영동물원에 더해 외래 야생동물 보호소를 2개소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자가 사육을 포기한 동물은 이 시설에 인수된다. 외래 야생동물 유기 시 생태계 교란뿐 아니라 질병 감염, 공중안전 우려 등 사회적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계획에 명시된 야생동물 카페 운영을 금지 외에 별도로 야생동물 유입 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 간 거래가 여전히 가능하나 야생동물을 해외에서 유입할 때 사육 안전성이나 감염병 위험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국내에 유통한 사례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라 법적으로 반려동물로 허용한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6종도 국내 유입 시 충분한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태규 수의사는 “현재 광견병 항원검사 정도를 개, 고양이만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며 “외국에서 사람이 기르던 동물을 들여와 야생에서 새로운 감염원을 가져올 가능성은 작지만 검역체계가 없어 다른 동물이 새로운 질병을 가지고 들어올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지난 5일 개인 간 거래·판매가 가능한 야생동물 백색목록을 지정하자는 내용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내 동물원은 기관별 편차가 크다. 수도권 일부 대형동물원은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인증할 정도로 국제적 수준을 인정받았으나 지역에 따라 공영동물원이어도 부지가 작고 예산 부족으로 시설이 낙후한 곳도 있다. 환경부는 권역별로 거점동물원 4개를 지정하고 권역 내 동물원을 이끌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동물원, 생물다양성 연구기관으로 바라봐야”
동물원은 동물 교육 외에 종 보전, 개체수 확대, 감염병 예방 등 연구 측면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이런 기능은 미약했다. 해외 각국 동물원이 보유동물의 사육·수의학적 정보를 공유하는 세계동물원정보관리시스템(ZIMS) 사용률만 봐도 유럽연합 300개(8.6%), 미국 239개(8.5%), 인도 33개(20.6%)이나 우리나라는 전체의 2%도 안 되는 2곳(1.8%)만 사용 중이다.
환경부는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에 동물원 수준 향상 외에도 생물다양성 보전·연구·교육 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현재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동물원이 3곳뿐이지만 이를 5년 내에 6곳으로 2배 확대한다. 국내 동물원정보관리시스템 K-ZIMS를 구축해 보유개체의 정보도 전산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종합계획이 절대 ‘나쁜 동물원을 개선하자’는 의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온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동물원 기능 확장을 추구한 점 등을 고려해 계획안을 “내용 자체는 균형 있게 잡았다”고 평했다.
이 대표는 동물원 변화를 위해서는 대중의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야생동물을 만지고 사진 찍는 대상으로 보고 동물원에 주로 오락 목적으로 간다”며 “현 동물원 수준은 모두가 방관한 결과”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많아졌어도 무책임하게 유기하는 사람은 여전하듯이 동물복지에 관심이 높아졌어도 기후변화나 서식지 파괴 등 야생동물이 갇힌 원인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동물원이 자연의 면적과 복잡성을 축소한 생태계 단면을 보여주고 이 동물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야생에서 개체군 복원을 위해 어떤 노력 중인지를 알려야 한다”고 미래의 동물원을 그렸다.
동물원의 공간 가치를 전시·관람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그는 “호랑이, 사자, 코끼리 같은 인기종 관람만 바라지 말고 생물다양성이 생태계 유지를 넘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기관으로 동물원을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