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검찰의 처리 방향을 놓고 관심이 모아진다. 여성계에서는 박 전 시장이 사망 전 스스로 문제 될 소지가 있었던 점을 인정한만큼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 및 수사 내용 공개를 촉구했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위력 성폭력 가해 사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 묵인·방조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과 ‘친박원순계’ 사람들이 나서서 2차 가해를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 결과는 실제 피해자를 고통 속에 내몬 몸통은 건들지 않고, 꼬리만 건든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경찰의 지난 수사 결과 발표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 정권의 손발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후 검찰이 일부의 사실이라도 밝혀주지 않았다면,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는 꽃뱀, 악녀, 마녀로 앞으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찰은 피해자 A씨가 박 전 시장을 강제추행,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 “A씨와 참고인을 조사하고, 제출 자료를 검토했으나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채 발견돼 관련 법규에 따라 불기소(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경찰이 의혹의 실체에 대한 조사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누구나 예상 가능했던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과만을 내놓으면서 혼선만 가중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 발표 다음날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북부지검은 박 전 시장 스스로 문제 될 소지가 있는 행동을 A씨에게 했던 점을 인지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계는 경찰도 수사를 통해 규명된 사실을 밝혔어야 한다며 경찰의 단순 ‘공소권 없음’ 반복으로 인해 이 사건을 은폐·회피하고 싶어하는 세력에게 마음대로 왜곡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바탕이 제공됐다고 지적했다.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피의자 사망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어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참고인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두 차례 영장 기각으로 휴대전화 포렌식이 불가능해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도 어려웠다”고 해명한 상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박 전 시장이 ‘문제 될 소지의 문자메시지가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한 부분이 밝혀진 만큼, 사망 동기와 범죄 사실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사망 동기는 고인과 유가족의 명예를 위해 감춰질 것이 아니라 진실을 위해 밝혀져야 한다”면서 “검찰은 이미 포렌식 수사가 진행된 사망 동기 관련 수사 내용을 함께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장에선 최근 검찰이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유가 독립성 및 권력 감시 기능을 보호받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권력과 연관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것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활동가는 “검찰의 권력은 더 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있다. 국민들이 정부·여당과 검찰의 지독한 싸움을 몇 달간 봤던 것은 그 때문이라 믿는다”면서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이 책임을 회피하며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를 모함하려는 시도를 하는 와중에 서울중앙지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대한 강한 항의 등도 나왔다. 신 대표는 “남 의원의 피해 사실 유출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라면서 “한국 사회 정치인들이 인맥으로 얽혀 있고, 자신의 권력 확대를 위해 수면 아래서 서로 어떻게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 등은 이외에도 성추행 묵인·방조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시 전·현직 관계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 및 혐의 입증 등을 검찰에 촉구했다. 앞서 경찰은 이들에 대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