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첫 배상 판결로 출구를 탐색하던 한·일 관계 경색 국면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8일 판결이 나오자마자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이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를 외무성 불러 항의하고,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이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남 대사는 초치(招致)된 뒤 외무성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에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차분하고 절제된 양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이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심리에 불참했다. 주권면제란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재판에서 피고가 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가토 장관은 이날 다시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사례처럼 앞으로 법원의 판결문 송달과 원고(피해자) 측의 일본 국유재산 압류시도 과정에서 한·일 갈등 격화는 불가피하다.
강제동원 피해배상 소송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것과 달리 이번 소송은 국가(일본 정부)를 피고로 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후폭풍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와 관련해 “일본 측은 주권면제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판결이 나옴에 따라 한국 개인이 일본 정부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 등이 속출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경계감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일 정부는 공교롭게 이날 각각 강창일 주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대사 임명을 정식 결정했다. 이달 중 부임하는 신임 두 대사 앞에 거대한 난제가 하나 더 놓이게 된 셈이다. 강 대사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어서 마음도 무겁고 어깨도 무겁다”고 말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홍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