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문명… 그들이 남긴 의미있는 ‘흔적’

BC 7500년경 도시 터키 ‘차탈회위크’ 유적
사회계급 흔적·화려한 건물 등 발견 안돼
‘지배층 형성이 문명 전제조건’ 인식 뒤집어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 실체 밝힌 발굴
‘남성 종속된 존재’ 여성 역할과 배치 확인
승자 역사에 가려진 25개 세계 문명 소환
‘낯설지만 신선한’ 인류에 대한 이해 넓혀
고대 그리스 조각가 폴리크레이토스의 ‘상처 입은 마마존’의 복제품. 그리스에서 여전사에 대한 문화적 기억을 갖고 있어 플라톤은 여성들이 전사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베개 제공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하랄트 하르만/이수영/돌베개/1만8000원

 

1961∼1965년, 오늘날 터키 영토 일부인 아나톨리아에서 네 번의 발굴 작업 끝에 도시 규모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에 따라 많게는 1만 명, 적게는 수천 명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었다. ‘차탈회위크’라고 불리는 이곳은 서기전 7500∼5600년 세워져 2000년 이상 이어진 취락지로 분석됐다. 도시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이지만 차탈회위크에는 이후 형성된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것이 없다. “사회 계급에 따라 주민을 구분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다른 집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한 건물도 전혀 없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초기 형태 도시로 여겨지는 차탈회위크의 이런 특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독일 문화학자인 하랄트 하르만은 자신의 책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에서 차탈회위크의 특이함을 이렇게 분석한다. “초기 문명 발전에 대안적 모델이 존재했다는 인상을 준다. …도시적 환경에 수천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조직도 사회적 위계질서 없이 얼마든지 기능할 수 있었다.”

익히 알려진 것과는 다른 역사의 이런 전개를 저자는 “잃어버릴 뻔한 오솔길”이라고 표현했다. 인류가 걸어온 큰 길은 아니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분명 경험했던 그 길에 놓인 25개의 문명을 소개한다.

하랄트 하르만/이수영/돌베개/1만8000원

“이 문명들은 분명 그들의 흔적을 남겼고 역사의 과정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승리자나 후속 문명에 의해 억압되고, 감춰지고, 그 기억이 지워지고 금지되었기 때문에, 또는 그들이 이룩한 성취가 다른 문명의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잊히고 말았다.”

25개의 문명은 낯설고, 어색하다. 이것은 동시에 세계사에 대한 신선하고, 새로운 깨달음일 수 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다.

차탈회위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문명이라 불릴 만한 거대하고, 오래 지속된 질서를 만들어낼 때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는 일반적인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을 뒤집는다. 서기전 6000∼3000년대에 형성된 ‘도나우 문명’도 비슷한 특성을 보여준다. 저자가 ‘고(古)유럽’이라고 지칭한 이 문명은 도나우강과 도나우의 수많은 지류를 중심으로 대규모 유통망을 형성하며 발전했다. “도나우 문명에서 거래된 전체 물품의 규모는 수천 년 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확인된 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나우 문명을 인류 초기의 문명으로 할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수준이 발달한 문명을 이야기할 때 필수적인 조건으로 언급되는 “국가적인 조직 형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나우 문명은 평등사회였다.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취락지의 특징, 지배권의 상징 등이 확인된 바 없다. 저자는 이런 특징이 우리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즉 “위계질서에 따라 조직되지 않은 공동체에서도 사회와 경제, 기술적 수준이 고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배층의 형성은 고도 문명의 생성에 필요한 일반적인 전제 조건이 아니다”는 것이다.

책이 전하는 세계사의 또 다른 면모는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여겨진 여성의 지위, 역할과 관련된다.

여전사 부족 ‘아마조네스’는 신화 속의 존재로만 여겨져 왔다. 남성을 압도하는 거친 여전사란 정체성은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남녀의 성역할과도 배치된다. 하지만 아마조네스가 실체를 가진 존재였을 수 있다는 발굴이 있었다. 흑해 주변의 유목민 문화에서는 “군인의 예우를 갖춰 매장된” 여성들의 무덤이 발견됐다. 부장품은 무기였고, 무덤 주인의 뼈는 치고, 찌르는 무기에서 비롯된 손상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를 ‘아마조네스 왕국’이 실제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리스 등에서는 여전사에 대한 문화적 기억을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만년의 저서 ‘법률’에서 흑해의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무기를 잘 다루고, 말을 잘 탄다고 강조하며 그리스 여성 역시 적이 공격해 올 때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시리아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는 3세기 중반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와 대결했다. 로마 제국의 속주 중 하나였던 팔미라의 여왕이 된 제노비아는 로마에 충성하는 것처럼 위장한 가운데 주변부에서 교묘한 정책을 펼쳐 영토를 확장했고, 마침내 이집트를 정복했다.

책을 해제한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고대 문명이라고 하면 세계사 시간에 배운 근동, 이집트, 중국 같은 나라와 지역이 쉽게 떠오를 것”이라며 “기존에 잘 알려진 문명들만 소개하는 일방통행로 같은 문명 연구서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책의) 부제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은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잊힌 문명을 뜻한다”며 “저자 하르만은 인류사에서 수많은 다양한 문명들이 존재하다가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으리라는 상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고 평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