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이 대폭 올라 사실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반복되는 산업재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여론과 중대재해법 통과를 고려해 형량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우려의 입장을 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는 전날 107차 회의를 열어 형법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양형위의 산안법 형량 강화에는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기까지 발생하는 상당한 시간적 공백을 메우는 취지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중대재해법은 법 공포 1년 뒤 시행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 유예를 뒀다. 법조계는 산안법 형량 강화로 중대재해법의 3년 유예 공백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재계는 중대재해법 통과에 이어 형량 상향 조치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안전사고를 막으려면, 단순히 기업인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기반을 갖추고 오랜 시간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 문제”라면서 “단시간에 효과를 내려고 기업의 경영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1년 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데 바로 산업안전보건법 처벌수위까지 끌어 올리면, 경영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해외 선진국보다 수위가 높은 편인데, 기업이나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해 미국(7000달러 이하)과 독일(5000유로 이하), 프랑스(1만유로 이하) 등은 징역형 대신 벌금형만 부과하고 있다. 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 벌금, 영국은 2년 이하 금고 또는 상한이 없는 벌금을 부과하지만, 최대 10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할 수 있는 한국보다는 수위가 낮다.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소상공인들이 산업안전법으로 강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산안법상 지켜야 할 의무가 1000개가 넘는 상황에서 양형기준까지 강화돼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은 대표가 모든 업무를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나쁘거나 과실로 직원이 사망하는 경우 산안법과 중대재해법에 의해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양형위는 이밖에 주거침입범죄, 환경범죄 양형기준안도 의결했다. 특히 환경범죄는 △폐기물·건설폐기물 범죄 △대기환경 범죄 △물환경 범죄 △해양환경 범죄 △가축분뇨 범죄 등으로 유형을 나눠 법정형에 따라 형량범위를 제시하고, 각 범죄 유형에 맞는 양형인자 표를 설정했다.
이창훈·박세준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