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한 ‘국정농단’ 사태가 14일 박근혜(69)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선고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이번 재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면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기소된 지 3년9개월 만에 모든 법정 다툼을 끝내게 된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4일 오전 11시 박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등 사건에 관한 재상고심 선고 공판을 연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2017년 10월부터 모든 재판에 불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장막 뒤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진 ‘비선실세’ 최서원(65·개명 전 최순실)씨 존재가 드러나면서 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던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크게 세 갈래다. 2017년 4월 박영수 특검은 대기업들을 상대로 수백억원에 이르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강요하는 등 18개 혐의를 적용해 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이 중 새누리당 공천에 불법 개입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2018년 11월 징역 2년이 확정됐고, 이 부분은 지금까지의 수감기간만으로도 형 집행이 끝났다.
이밖에 뇌물수수와 강요 등 ‘국정농단’ 관련 혐의와 국정원장들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는 별도의 항소심 재판을 거쳐 각각 징역 25년, 5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정농단 사건은 뇌물죄 분리선고 원칙에 따라 다시 형량을 정하라는 이유로, 특활비 상납 사건은 2심이 일부 무죄로 본 혐의도 유죄로 인정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서울고법은 지난해 7월 뇌물 혐의에 징역 15년과 벌금 180억원을, 직권남용 등 나머지 혐의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는 파기환송 전 내려진 징역 30년·벌금 200억원에 비해 대폭 감경된 것인데, 대법원 취지에 따라 강요죄와 일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이 불복해 재상고심이 열렸고 14일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직권남용과 강요죄는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취지를 그대로 따라 일부 혐의에 무죄를 내렸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무죄 선고와 관련한 검찰의 재상고 이유만 검토하는 등 간략히 사건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형이 확정되면 박 전 대통령의 최종형은 징역 22년에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이 된다.
법정 소송이 끝나면 불씨는 ‘특별사면’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그동안 보수 야권은 ‘국민대화합’을 들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사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자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최근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정치적 후폭풍이 거센 바 있다. 특히 차기 대선 정국 지형의 가늠자가 될 오는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러 정치적 셈법이 더해지면 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정국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를 저지른 인사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여권 내에서도 사면 반대 목소리가 높아 사면 카드를 꺼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