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장모씨에게 검찰이 살인죄를 적용한 것은 폭행의 정도가 사망에 이를 만큼 잔혹했다는 전문가 감정 결과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장씨 혐의가 당초 아동학대치사에서 살인죄로 바뀌면서 정인이의 사망 원인과 장씨의 ‘살해 의도’ 입증이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살인죄 적용 위해 고의성 입증이 관건
전문가들은 저항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지속적인 폭력은 그 치명성과 일방성을 고려해 성인 폭행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던져도 깨지거나 고장 날 걸 아는데, 아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학대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하겠는가”라며 “아이가 상당기간 신체적 학대를 당한 사실이 입증된 상황에서는 살인의 고의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전체 학대기간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몸집 차이, 피해자의 연령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유사 사건에서도 살인죄 인정
그동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대부분 학대치사, 폭행치사 등 ‘치사죄’가 관행적으로 적용됐지만, 사회 관심이 커지면서 살인죄를 인정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에 최초로 살인죄를 인정한 2013년 ‘울산 계모 학대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계모 박모씨는 ‘소풍 가고 싶다’는 7세 의붓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살인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7세 아이에게 성인의 손과 발은 흉기나 다름없다”며 형량을 높여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흉기가 아닌 맨손과 맨발로 때려 숨지게 해도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해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에 큰 획을 그었다.
지난해 9월 천안에서 9세 의붓아들을 7시간 이상 여행용 가방에 가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모 성모씨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으나 검찰은 ‘뜀뛰기’, ‘헤어드라이어 고문’ 등의 추가 범행을 밝혀내 살인죄로 바꿔 기소했다. 73kg인 성씨는 자신의 두 아이와 함께 23kg에 불과한 아이 위에 올라타 뜀을 뛰고, 헤어드라이어로 가방 틈 사이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인식했고, 미필적으로나마 그 결과를 용인했다고 넉넉히 인정된다”며 성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김수미·이강진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