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 정말 한계에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오는 20일이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지 1년이 된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한 달 넘게 2.5단계로 유지되면서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일명 ‘코로나 블루’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당연해
우울증은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대한 평가로 진단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감정적으로 우울하지 않아도 심장이 빨리 뛰고 소화가 안 되고 열이 나는 등의 신체반응으로 나오기도 한다. 또 기분이 처진다고 무조건 우울증이라고 볼 것도 아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하긴 해도 부모로서 그 역할을 잘하고, 직장 업무 유지에도 문제가 없다면 잘 견디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무력감으로 인해 학생이 학교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등 대인관계 기능에 영향을 준다면 셀프 치료로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전문가 상담을 권유했다.
최근 언론에서 코로나 블루에 대한 얘기가 오르내리는 게 오히려 별문제가 없던 사람들의 우울증을 자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코로나 블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울증을 자극하기보다는 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안도감이 위로가 되는 순기능을 한다고 바라봤다.
전 교수는 “본인의 우울감과 화가 코로나19로 인한 것임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위로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히려 우울의 원인과 분노의 대상을 직장이나 가족 등 다른 데서 찾게 되면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울증 평가도구(PHQ-9)를 통해 스스로 체크해보고 10점 이상일 경우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 그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낫다. 20년 넘게 정신건강의학과에 몸담은 나 역시도 지금 상황은 힘들다”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식의 2차적 스트레스가 오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규칙적인 생활리듬 지켜야
그렇다면 불안감과 무력감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권하는 것이 몸의 건강이다. 마음과 몸 관리는 패키지로 같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대현 교수는 “사람들이 보통 감기에 걸렸을 때 기분도 안 좋아진다. 아프니까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겠지만, 통증이 있어서 울적한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염증 반응이 뇌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염증성 우울증’이다. 염증이 뇌로 연결돼 사람의 기분을 변화시키고, 그 우울함이 다시 염증세포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은 늘 최고의 항우울제로 꼽힌다.
햇볕을 쬐면서 낮과 밤의 구별을 줘서 몸에 활력이 생기도록 하는 등 기본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택근무 여부에 따라 취침과 기상 시간이 달라지고 늦은 시간까지 혼자 술을 마시는 등의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전 교수는 일부에서 투자를 도박처럼 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고 무리하게 투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걱정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불안에 대한 반동형성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 방에 다 해결하려는 조바심이 실패하면 더 큰 불안을 불러온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코로나19만 지나가면 끝? NO
코로나19가 코로나 블루를 촉발했지만 코로나19가 사라진다고 갑자기 모든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을 ‘후유증’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전홍진 교수는 특히 코로나19 시대의 삶이 자칫 삶의 기본으로 설정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만들어진 인적·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코로나19에 노련하게 대응한 실버세대와 달리, 갓 대학에 입학한 젊은 세대는 비대면의 일상화로 인해 사회를 경험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학습하며 성숙하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대인관계의 기본이 형성되는 시기에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이들의 ‘사회화’ 연습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구가 줄고 혼자 사는 사람도 늘어나는 등 비대면이 시대적 흐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산업의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가더라도 사회의 또 다른 축으로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윤 교수 역시 “언택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커넥션, 즉 교류”라며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찾아 자연과 교류하든, 비대면을 통한 사람과의 교류든, 새로운 문화와의 교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