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공업용 미싱

‘공업용 미싱’은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은 대표적인 막말이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방선거가 임박한 1998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은 사기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염라대왕에게 끌려가면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을 입에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당시 발언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법원도 “정치적 비판의 한계를 넘어섰다”며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공존·상생이 아니라 적의·증오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인신공격성 막말은 정치인에게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지지층을 위무하고 결집하는 데 이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이 배출한 대통령을 직격할 때는 유난히 자극적인 표현이 동원된다. 노무현정부 때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노 대통령을 “등신”으로 비유했다. ‘환생경제’라는 연극에서는 노 대통령을 “노가리” “육실헐놈” 등 인격모독성 언어를 동원해 비난했다. 이명박정부 때 민주당 의원은 이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 운운해 파문을 일으켰다.



다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공업용 미싱이 20여년 만에 또 정치권에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 입장을 내놓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전직이 되면 본인이 사면 대상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퇴임 후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발끈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공업용 미싱을 선물로 보낸다”고 치받았다. 그러자 주 원내대표는 “미싱을 보내면 잘 쓰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정치보복을 시사하고, 저급한 말을 끄집어낸 두 의원 모두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모름지기 정치는 언어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정치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다. 정치 언어가 이렇게 추하고 경박해서는 선진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는 정치자금 투명화·권력 분산 등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막말이 횡행하는 정치 언어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