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판결이 확정된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 주도의 시정을 요구한 데 대해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권리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 상처 치유를 위한 해결 노력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23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하고, 동시에 피해 당사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부 간의 합의 만으로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상의하며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지만 일본 측 또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 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 국제 인권 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정부는 판결이 외교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항소 가능한 기간인 지난 22일 자정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대해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성명을 통해 "이 판결은 국제법과 양국 간 합의에 분명히 위배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일본은 다시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어 "국제법에 따라 국가는 원칙적으로 다른 국가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며 "일본은 국제법상의 국가 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의 관할권을 받는 것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기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국가 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국제 질서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며 "국가의 모든 권력적 행위에 대해 적용돼야 한다는 전통적 견해가 있는 반면 심각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 등과 관련해서는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유력한 견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이번 사건에서 해당 재판부는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심각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 등 근본적인 인류 공통 가치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 국가 면제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서 인권을 중시하는 견해"라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