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1주일째인 26일(현지시간) 미국 내 뿌리 깊은 인종 불평등 해소를 위한 행정명령 4건에 서명했다. 아울러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지난해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거론하면서 “인종적 평등에 대한 이 나라의 태도에 있어 변곡점이 된 사건이자 수백만 미국인과 세계인의 눈을 뜨게 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구조적 인종차별이 미국을 아주 오래 괴롭혔다”면서 “평등의 증진은 모두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택정책에 있어서도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조항이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하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국인혐오증 대응을 지시하면서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와중에 매우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중국에 돌리며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이건 미국이 아니다”며 “법무부에 아시아계 미국인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법무부에 사설 교정시설 이용에 신중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수감자 중 상당수가 유색인종인데, 일부 사설 교정시설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재소자들을 수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수입이 크게 늘어난 대형 사설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GEO그룹과 코어시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설 교정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를 폐지했고, 강경 이민정책으로 이민자들의 구금이 크게 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날짜별로 주제별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트럼프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27일에는 기후변화, 28일 건강보험, 29일 이민에 대한 정책을 발표한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취임 후 첫 통화를 하고, 핵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을 5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백악관은 양측이 시한인 2월 5일까지 협정 연장을 완료하도록 긴급히 협력하기로 양 정상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크레믈궁도 두 정상이 뉴스타트 연장 합의에 관한 문서를 교환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하고, “양측이 수일 내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하원에 연장 법안을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2010년 4월 미·러 양국이 체결한 뉴스타트는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1550개 이하로, 이를 운반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 등의 운반체를 700기 이하로 각각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두 정상은 하지만 첫 통화에서 기싸움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미 연방기관 해킹,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살해 사주, 지난해 대선 개입,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 등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받는 각종 의혹에 관한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우리나 동맹에 해를 끼치는 러시아의 행동에 대응해 국익을 지키기 위해 단호히 행동할 것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크레믈궁은 이날 통화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항공자유화조약 탈퇴, 미국이 탈퇴한 이란 핵합의(JCPOA) 유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정상회의 소집 구상 등 국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국제조약 탈퇴 문제를 지적하고미국의 협조가 필요한 현안들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언급했다는 얘기다.
이번 통화는 지난주 러시아 측이 요청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동의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향해 보여준 온화한 언사에서 결별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도 “새 대통령은 외교적 공간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