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게 참 행복한 추억인데…. 사실 백 선생님이 예고치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내가 백남준인데’ 하고 만났는데, 그때는 그 양반이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지도 몰랐어요. 티브이 1003대로 타워를 만드는데 그걸 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1분도 생각 안 하고 ‘아, 하죠’ 라고 대답하니 선생님이 ‘이거 뭐 생각도 안 하고 한다는 답이 나오느냐’ 하셔. ‘그럼 해줘’ 하시고 선생님은 미국으로 떠나셨어요. 다 맨들어가지고 예정된 생방송 날짜에 다 (가동을) 했는데, 미국에서 미국 방송 온에어(생방송)로 보니까, (텔레비전 화면이) 다 들어오니까, 완벽하게 다 작동하니까 선생님이 난리가 난 거야. 그걸 시작으로 18년 동안을 혼자 가방 싸들고 세계를 누비고 다닌 거야.”
주름진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백남준의 동지 이정성.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을 구현했던 기술자이자,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작품을 수리하고 있는 ‘아트 테크니션’이다.
29일은 2006년 세상을 떠난 백남준의 15주기다. 그를 회고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때다.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이 박물관의 전시는 대규모로 화려하게 꾸며진 전시도 아니고 백남준 15주기를 계기로 하는 전시도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기획보다 백남준을 기리고 싶은 관람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전시다.
전시에는 백남준이 이정성에게 건넨 설계 드로잉, 백남준이 이정성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한 노트북, 자신의 작품을 커다랗게 실은 영자신문 위에 두꺼운 펜으로 ‘이것은 이정성이 진정한 창조자다’라고 쓴 백남준의 신문 스크랩 등이 나왔다. 진정한 예술가의 심성을 생각하게 한다.
‘드로잉을 10개로 그렸습니다. TV 12개로 제작하시는 데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모를 더해 이정성에게 보낸 드로잉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박물관 측은 전시를 기획하며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주목했다고 하나, 이 전시는 ‘예술가와 기술자의 만남’, 나아가 ‘예술가와 기술자 공동의 노동 현장’에 더 가깝다. 인연이 만들어낸 예술, 그걸 겪은 이들의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다. 천하의 백남준도 기술자를 찾아 청계천 골목을 돌아다녔고, 거기서 운명의 사람을 만났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백남준의 후예를 꿈꾸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에게 만큼은 그 누구보다 위대한 기술장인들에게 뜨거운 사의를 고백하고 있다. “세운상가를 찾아가면 어려움이 명쾌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죠”,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거나 설치물을 제작해 주실 때 이해도도 높고 제작 기간도 빨라요.” 이정성의 추억담이 흐르는 영상 좌우로 엄아롱, 박대선 작가의 언급이 적혀 있다.
전시에서는 ‘TV시대’를 열었던 토대와 환경을 조망하며 시대적, 역사적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백남준의 다수 작품과 제작과정에서 남긴 숱한 드로잉, 메모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게 만든 코너가 있어 요긴하다. 백남준의 ‘자화상 달마도’, 판화 ‘골든 뷰’ 등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정성이 백남준을 추억하며 보관해왔을 다수 소장품들이 귀중하게 다가온다. 마치 백남준이 지금도 이정성을 통해 살아남아 선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만 같다. 백남준이 만들어낸 결과물과 업적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존재했던 그의 일상과 따뜻함에 젖어드는 전시다. 5월9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