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사상초유 법관 탄핵을 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실현성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탄핵 대상으로 꼽히는 판사의 경우 곧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난다. 여권이 탄핵 소추에 속도를 낸다고 해도 본 심판을 받을 때쯤이면 전직공무원의 신분인 탓이다.
공무원이 아닌 대상에 관한 탄핵 심판은 전례가 없을뿐더러 파면에 실익이 없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여권이 탄핵 그 자체보단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법조계와 뉴시스에 따르면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오는 3월1일 현직에서 퇴임한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때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토 전 지국장은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는데, 임 부장판사의 개입으로 해당 재판에 청와대 입장이 반영됐다는 게 공소사실이다.
이와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체포치상 사건에서 판결문의 양형 이유를 수정하도록 지시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임 부장판사 외에도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이 1심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자, 정치권에서는 재판 대신 탄핵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헌법 106조는 법관이 파면되기 위해서는 탄핵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파면될 경우에는 공무원법상 퇴직금과 연금을 받지 못하며, 변호사 등록이 거부될 수도 있다.
여권에서는 임 부장판사의 잘못이 있으므로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사용해 그를 파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임 부장판사에 관한 탄핵소추가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우선 임 부장판사의 경우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는 3월1일이면 현직 법관이 아니게 된다. 여권이 속도를 내 2월 본회의를 열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한다고 해도 임 부장판사는 사실상 전직공무원의 신분으로 헌법재판소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헌재는 지금까지 전직공무원의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한 바 없어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탄핵이라는 것이 공무원직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전직공무원에게 그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헌재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회가 탄핵 소추를 하면 임 부장판사가 퇴직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다.
사의를 표명한 법관의 경우 탄핵이 소추되면 직무가 정지되면서 퇴직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임 부장판사는 사의를 밝힌 게 아닌, 이미 퇴직 시점이 3월1일로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무관하다는 분석도 거론된다.
이처럼 법관 탄핵 추진이 실효를 거두기 힘든데도 여권이 강행하는 데는 사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효성이 없는 탄핵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며 "법관들에게 '앞으로 재판 잘하라.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밖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재판이 진행 중인 임 부장판사를 탄핵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