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도 재밌잖아요. 이 중에서 나보고 하라고 하면 엿장수가 어떨까?”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을 보며 정현종 시인이 건네는 말이 유쾌하다. “엿장수가 오늘은 많이 팔았는지 빙그레 웃고 있는데…”라며 국립중앙박물관 오다연 학예연구사가 보태는 감상이 정겹다.
문화재를 두고 시인과 문화재 전문가의 대화는 지난해 5, 6월 선보인 박물관 온라인 콘텐츠 ‘박물관의 특별한 초대’의 일부다.
“다양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한” 결과의 하나다. 오래전부터 시도된 것이긴 하나 지난해 속도가 붙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특히 온라인 콘텐츠 부문에서 이런 시도가 크게 늘었다. 쉽고 흥미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가 워낙에 드높아 온라인 풍경이 그렇게 바뀐 것도 같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
“三個의 병으로 接着한 좁은 環條. 五個의 花樹狀立飾을 附飾. 環條의 兩線에는…”
박물관 소장품 중 국가지정문화재인 문화재의 기초정보를 담은 ‘국보·보물 검색’ 페이지에서 금령총 금관(보물 338호)을 설명한 글 중 일부다. 내용 파악은 고사하고 읽기조차 힘들다.
코로나19 사태로 성큼 다가온 언택트 시대, 온라인 콘텐츠는 문화를 즐기는 통로로서의 역할이 급격히 커졌다. 쉽고 재밌으며 의미까지 제대로 담기길 바라는 오래된 욕구는 더욱 간절해졌다.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산물이라 어렵고, 민족문화의 찬란한 흔적인 지라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문화재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어디쯤 와 있을까. 다양한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면 한층 풍요로워지긴 했으나 치고 나가는 한 쪽과 방치되다시피 한 다른 쪽이 공존하는 것 같아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온라인 콘텐츠 생산을 주도하는 국가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본 현실의 일단이다.
◆웹드라마 배경이 된 서원, 코로나가 바꾼 온라인 풍경
‘박물관의 특별한 초대’는 12편으로 이뤄져 있다. 초대 손님은 유금와당박물관 유창종 관장, 배우 손숙, 힙합가수 가리온, 방송인 마크 테토 등 문화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했다. 콘텐츠의 격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재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층에까지 접근해 보겠다는 의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두세 시간 정도 촬영한 걸 10분이 안 되는 영상으로 압축한 건 지루함을 피하려는 것이란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을 배경으로 한 웹드라마 ‘삼백살 20학번’을 공개했다. 10분 정도씩인 6편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서원에서 공부하던 조선의 도령 3인방이 2020년 한국으로 떨어지며 시작한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원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데 젊은이들의 ‘썸’까지 등장한다.
‘박물관의 특별한 초대’, ‘삼백살 20학번’ 말고도 온라인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오프라인에서 열린 전시회, 공연, 학술대회 등을 바탕으로 한 동영상이 가장 많다. “어떤 행사든 동영상을 온라인으로 올리는 건 기본이 됐다”고 한다. 반복되는 휴관으로 직접 관람이 제한되면서 전시회를 VR(가상현실)로 구현하는 건 흔해졌을 정도다.
콘텐츠의 생산자, 소비자 모두 아직은 어색하고 기술이나 재원 등의 한계도 있어 평가는 엇갈린다. “이런 내용을 정말 잘 전달하는 스타가 한두 명쯤 나왔으면 싶다”는 누군가의 바람은 아직 히트작이라 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기관의 사업을 홍보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며 박한 점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보내며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기획부터 구성까지 연구사들이 직접 해야 해 일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적극적”이라며 “지금까지 오프라인 콘텐츠를 온라인용으로 다듬는 정도가 많았다면 이제 온라인 자체에 최적화된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주·탱주·익공살미…“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이란 게 있다. 국보, 보물, 무형문화재 등 공적인 보호, 관리의 대상이 되는 모든 주요 문화재의 기본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공간이다. 안내글, 사진, 동영상, 보고서 등을 이용해 국가가 공인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곳이어서 무게감이 크다.
여기서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1744호)을 검색하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단은 면석에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설치되어 있고, 상부에 갑석(甲石)을 덮은 통일신라시대의 가구식 기단(架構基壇)이다.”
창덕궁 주합루(〃 1769호)에는 “공포는… 이익공으로 주두와 익공살미, 행공이 짜여지고…”란 설명이 포함돼 있다.
당신이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문장을 보며 2018년 5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당시 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침류각’ 안내판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세벌대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뜻을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지적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문화재 안내판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우며 정확한 내용을 담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온라인에서 안내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문화유산포털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불국사 대웅전, 주합루는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일반인의 눈높이를 생각하지 않은 듯한 부분은 적잖이 눈에 띈다.
부주의와 무성의, 그로 인한 왜곡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들도 있다.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을 소개한 글에는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이 빠져 있다. 국제사회가 훈민정음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걸 알뜰히 챙겨서 알려야 할 정보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86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호)은 사진이 문제다. 경천사지 석탑은 2005년 이후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전시 중이다. 하지만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실린 사진만 보면 경복궁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반환된 후 1995년까지 경복궁에 있었을 때의 사진만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단일 문화재로서는 가장 긴 20년간의 보수, 수리를 거쳐 2019년 4월 대대적인 준공식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 바른 콘크리트를 벗겨내고 외관, 안전성 모두를 개선해 문화재계의 큰 경사였다. 하지만 보수 후의 미륵사지 석탑 사진은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없다. 헛웃음을 치게 하는 건 동탑의 사진은 버젓이 올려둔 것이다. 1993년 세워진 동탑의 모습은 구체적인 근거 없는 것이라 최악의 문화재 복원 사례로까지 꼽힌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동탑이 미륵사지 석탑의 원형일 것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다.
◆가독성 낮은 어려운 안내문 왜
어떤 형태의 것이든 쉽고 재밌는 콘텐츠의 시작은 글쓰기다. 문화재 관련 콘텐츠의 문제를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전문용어, 한자 등의 남발, 번역투의 문장인 이유다.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이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았으나 개선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콘텐츠 생산자들의 익숙함을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문화재 관련 콘텐츠 생산자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이들이다. 수년간 공부를 하며 읽거나 쓴 논문이나 책의 대부분이 전문가 그룹 내부에서 생산, 소비되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어렵다, 어색하다고 말하는 용어나 문장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익숙하다.
문화재 안내판, 박물관 안내문 정비 등에 국어 전문가, 일반인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안내판 정비 과정에서 시민자문단을 운영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안내문을 쉽게 쓰기 위해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어문화원연합회 신다원 대리는 “박물관에서 안내문을 만들어 보내면 석·박사 이상의 국어전공자들이 표현을 다듬는다”며 “이것을 중학생들에게 읽게 하고 어렵다고 하면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 전문가는 자문단의 지적을 대체로 수용하지만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도 있다. 쉽게 풀어서 쓰는 것과 그것이 기존 용어가 담고 있는 문화재의 가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게 대표적이다.
가령 순장 풍습의 영향으로 사람 대신 묻었던 도용(陶俑)은 인형, 허수아비로 풀어서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명희 연구관은 “‘반가사유상’처럼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불상 양식을 (그 용어대로) 전시공간에서든, 교과서에든 각인시킬 필요가 있지만 무조건 한글로 풀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이런 필요나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자는 “문화재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가독성을 떨어뜨릴 뿐이니 전부 빼자”는 제안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 개선된 안내문에도 쓰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