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뵌 지 반년이 넘었어요.”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경남 창원의 고향집을 다녀온 뒤로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추석쯤 한번 더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연휴 기간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하면서 지난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것이다. 이번 설에는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정부가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연장하면서 집에 내려가는 게 어려워졌다. 박씨가 고향에 가면 가족 수가 5인이 넘기 때문이다. 박씨는 “1년 중 여유 있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는 건 명절뿐인데, 추석에 이어 설에도 가지 못해 아쉽고 섭섭하다”며 “불필요한 모임은 되도록 안 갖는 게 좋다는 것은 알지만, 5명이란 기준은 빡빡한 것 같다. 방역조치가 과도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이번 설에 여든이 넘은 부모님을 찾아뵈려 했던 강모(52)씨도 고민에 빠졌다. 결국 강씨와 남동생만 고향에 내려가고, 강씨와 남동생의 가족들은 서울에 남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찝찝하다. 강씨는 “나와 남동생만 고향에 다녀와도 사실상 서울에 있는 가족 모두가 접촉하는 것과 같지 않냐”며 “모임을 자제하라는 취지는 알겠지만 왜 이렇게까지 5명이란 숫자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공모(32·여)씨도 “연휴를 늘리거나, 분산해서 갈 수 있도록 휴가를 보장해 주는 식으로 정책적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지 않냐”며 “매일 지하철이나 직장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는데, 명절에 가족들을 보지 말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5인 이상이 모이더라도 누군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 단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모임을 강행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모(39)씨 부부는 아이와 함께 부모님 댁에 갈 예정이다. 이씨는 “아이가 없는 2인 가구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고 아이가 있으면 못 만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될 것 같다. 주변에서도 대부분 소규모로 모인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는 연장하면서 스키장과 헬스장 등 일부 시설의 방역기준은 완화한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한 누리꾼은 “가족은 5명 이상 모이지 말라면서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스키장 등의 방역기준은 완화하니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5인 이상 집합금지는 사실상 3단계에 준하는 방역조치로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나들 때 정부가 극약처방으로 내놓은 조치였다”며 “집회·시위 등을 제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적 모임을 5인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고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