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법관 탄핵 움직임을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정황이 4일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사법부 수장이 여당의 눈치를 보며 헌법 원칙인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당이 주도한 임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은 이날 가결됐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권력 눈치를 보느라 탄핵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거부한 데다 국회와 국민, 법원 구성원들을 상대로 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말이 되냐”며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김 대법원장의 사퇴 촉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다른 판사는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과의 면담 과정을 몰래 녹취한 사실도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이번 사태로 사법부 위상이 추락하게 됐다”고 개탄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총 투표 수 288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로 가결 처리했다. 현직 법관 탄핵소추안 의결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임 부장판사 측은 “헌법상의 중대한 절차를 진행하는 데 공소장과 미확정 판결문의 일부 표현만으로 국회 법사위원회 조사절차도 생략한 채 의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탄핵이 될 만한 행위가 없었음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희진·배민영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