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를 통과한 임성근(56·사법연수원 17기)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법조계에선 임 부장판사가 임기 만료로 이달 28일 퇴임하는 점을 들어 헌법재판소가 ‘각하’ 처분을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일부에선 헌재가 ‘기각’ 조항을 폭넓게 보아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각은 통상 사안에 관한 판단이 따라붙는다는 점에서 각하와 다르다.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가 이뤄지자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정치 싸움에 휘말렸다는 개탄과 함께 탄핵소추를 신뢰 회복을 위한 진통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정치인들 입김에 사법부 휘둘려”
◆“헌재, 실체 판단한 뒤 기각할 수도”
헌재가 각하가 아닌 기각 결정을 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 출신인 이명웅(62·〃 21기) 변호사는 “인력 등 문제로 2월 내 결론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각하 가능성이 높지만 기각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임 부장판사의 임기 만료를 헌법재판소법 53조 2항의 ‘파면’으로 유추해석해 실체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해당 조항은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해당 공직에서 파면되었을 때’ 심판청구를 기각하도록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만약 이번과 달리 임기 만료까지 3∼4달쯤 남았는데 증거나 증인이 많다는 등 여건 탓에 임기가 끝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며 “그럴 때마다 각하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파면 결정은 불가능하더라도 실체판단은 하도록 해당 조항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헌재법은 심판사건 접수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도록 하고 있다.
일부에선 헌재가 사건을 각하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헌법적 판단을 덧붙일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헌재는 2019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도 “정치적 합의에 불과해 위안부 피해자의 대일 배상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정문에 적었다.
◆쟁점은 ‘중대한 헌법 위반’ 여부
헌재 심판대에 이번 사건이 올라간다면 쟁점은 ‘중대한 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헌재는 “탄핵이 인용되려면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며 기각한 바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 대해 지난해 1심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이 일단 ‘중대한 법 위반’은 없었다고 본 셈이다. 다만 재판부가 임 부장판사의 행위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명시한 대목이 변수다. 헌법 65조 1항은 ‘법관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조건으로 들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선 “법관 탄핵의 ‘명분’을 남겨놓은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野 “정치적 목적 탄핵” vs 與 “재판 독립 지키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산고법 임성근 부장판사를 겨눈 탄핵소추안은 4일 국회 본회의가 시작된 지 약 1시간20분 만에 가결 처리됐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후 페이스북에서 “헌정 사상 첫 판사 탄핵소추, 사법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면서 “위헌적 행위로 탄핵소추의 필요성까지 제기된 법관을 두둔해 어떤 사법부를 만들려 하는지 야당에 되묻고 싶다”고 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임 부장판사 탄핵에 앞서 그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사실조사부터 할 것을 민주당에 요구하며 최후 방어전을 폈지만, 다수 의석을 앞세운 거대 여당의 탄핵 강행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오후 2시 본회의가 열리자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의 법관 탄핵 추진에 항의하기 위해 ‘엉터리탄핵 사법장악’, ‘졸속 탄핵’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코로나19 방역용 가림판에 붙인 채 임했다.
국민의힘은 우선 의사진행발언으로 탄핵안 처리를 지연시켰다. 국민의힘은 애초 탄핵할 사유가 없는 임 부장판사를 민주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탄핵하려 한다는 주장을 폈다. 첫 주자는 판사 출신 김기현 의원이었다. 그는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점을 언급하며 “1년 전엔 탄핵 사유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됐다는 것이냐”면서 김경수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등 여권 인사들이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거론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처분이 법원에서 집행정지를 당하자 여당은 판사를 대놓고 정면 공격했다”면서 “그래도 양심을 지키려는 판사가 지난 1월28일 최강욱 의원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자 갑자기 법관 탄핵을 들고 나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변호사 출신 김용민 의원을 내세웠다. 김 의원은 “판사의 잘못된 행위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 일은 ‘사법부 길들이기’가 아니라 재판의 실질적 독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 탄핵은 법원 내부권력이 함부로 재판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여야 발언 후 곧장 탄핵안을 상정하자 이번엔 부장판사 출신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미리 제출된 임 부장판사 법사위 회부 동의 건을 설명하기 위해 나섰다.
전 의원은 “국회법 130조3항은 탄핵소추 대상자의 성명, 직위, 탄핵소추 증거, 그 밖에 조사에 참고가 될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그런데 (여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에 첨부된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를 보면 1심 형사기록은 ‘문서송부 촉탁 예정’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탄핵 필요성을 판단할 근거도 없이 일단 처리부터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미다.
야당 요구는 전자 표결에 부쳐져 신속하게 부결됐다. 재석 278명 중 찬성 99명, 반대 178명, 기권 1명이었다. 박 의장은 곧장 탄핵안 심의를 이어가기 위해 탄핵안을 대표 발의한 판사 출신 민주당 이탄희 의원을 단상으로 불렀다.
이 의원은 임 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 내용을 거론하며 “피소추자는 헌법 1조 국민주권주의, 7조 직업공무원제도, 12조 적법절차원칙, 101조 법원의 사법권 행사, 103조 법관의 독립 및 형사소송법, 38조 재판의 불가변경력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투표는 무기명 투표로 진행됐다. 개표를 참관한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박 의장이 투표 결과를 말하기도 전 소속 의원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OK’ 사인을 보냈다.
이창수·배민영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