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인상주의·바로크·고딕… 조롱의 의미로 불렸다가 미술사조가 되다
기사입력 2021-02-09 10:00:00 기사수정 2021-02-08 20:57:31
⑬ 어처구니 없는 이름 인상주의, 모네 ‘해돋이의 인상’서 비롯 한 평론가가 비꼬는 투로 붙인 이름 바로크는 찌그러진 모양의 진주 가르켜 고딕은 고스족의 야만성을 풍자한 것
美 ‘저지쇼어’도 웨인즈버그서 바뀌어 새 이주자들이 저지 고향이름 붙여 경리단길도 원래 회나무로였지만 부르기 쉽고 사람에 알려지자 굳어져
누구나 어린 시절 원치 않는 별명으로 불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조롱하듯 붙인 별명이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당사자가 싫어하고 화를 낼수록 재미있다며 더 많은 아이들이 그 별명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게 남이 악의적으로 붙인 별명이다.
서양 미술사조 중에는 그렇게 조롱의 의미로 불렸다가 영원히 붙어버린 것들이 흔하다. 잘 알려진 대로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말은 클로드 모네의 1872년 작품 ‘해돋이의 인상’을 본 한 평론가가 비꼬는 투로 붙인 이름이고, 바로크(Baroque)라는 이름은 원래 찌그러진 모양의 진주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17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미술양식을 조롱 섞인 투로 부르다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딕(Gothic)이라는 것도 이탈리아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북부 유럽의 건축양식은 기괴하다면서, 그 양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스(Goth)족의 후손들이라서 그렇다고 붙인 이름이다. 고대 로마를 침략해 문화유산을 파괴한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스족이 가진 야만성을 조롱한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이름 중에도 그런 예가 있다. 필자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발견한 ‘저지 쇼어(Jersey Shore:뉴저지 해안)’라는 이름의 소도시가 그렇다. 인구가 고작 4000명밖에 되지 않으니 도시라기보다는 그냥 큰 마을 수준에 불과한 곳이다. 고속도로 옆에 그곳으로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았으면 그 존재도 몰랐을 만큼 작은 동네다. 이 ‘저지 쇼어’라는 이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펜실베이니아주가 어떤 곳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저지 쇼어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한 것은 펜실베이니아주의 한가운데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미국에는 각 주마다 대표적인 주립대학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많은 학교들이 ‘토지공여(Land Grant) 대학교’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를 해방하고 남북전쟁에 승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 중 하나가 임기 중에 통과시킨 토지공여법이다. 링컨은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지를 무상으로 각 주에 제공해서 주립대를 설립하도록 했다. 1862년에 통과된 이 법의 덕택에 무려 100개가 넘는 학교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이전만 해도 각 주에 살던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면 멀리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에 가야 해서 대학교육의 기회를 놓쳤지만, 주립대의 탄생으로 양질의 교육을 자기 주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주가 주립대학교를 대도시 근처가 아닌 주의 한가운데 지었다. 그 주에 사는 학생들에게 가장 공평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사는 주에 있는 학교라고 해도 마차를 타고 며칠을 여행해야 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저지 쇼어라는 동네는 펜실베이니아의 주립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는 바다를 접하지 않는 주이고, 주의 영토 대부분이 애팔래치아산맥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펜실베이니아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개척한 윌리엄 ‘펜’의 이름과 숲이라는 의미의 ‘실반/실베이니아’를 붙여 만든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지 쇼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장소는 뉴저지의 해안이다.
뉴저지는 펜실베이니아의 동쪽에 위치한 주로,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긴 해안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 긴 뉴저지의 해안선을 가리키는 이름이 저지 쇼어다.
흔히 ‘동부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리는 애틀랜틱시티도 저지 쇼어에 있다. 게다가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MTV에서 2010년을 전후해서 방송한 인기 리얼리티쇼의 제목도 저지 쇼어였다. 젊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뉴저지의 해안가에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촬영, 편집한 것이었는데 남자들은 근육 만들기에, 여자들은 쇼핑하는 데 집중하는 허영에 찬 모습을 보여주며 미국인들이 이들 집단에 대해 가진 문화적 편견을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저지 쇼어가 그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펜실베이니아의 고속도로를 지나던 운전자들이 산골 마을 저지 쇼어로 가는 표지판을 보고 뉴저지 해안가인 줄 알고 찾아와서 “해안이 어느 쪽에 있느냐”, “카지노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어떻게 해서 저지 쇼어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그 기원은 17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절, 멀리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자란 르우벤 매닝, 제레마이아 매닝 형제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했다. 그때 이미 동부의 많은 주가 인구팽창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아마도 경작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옆 주로 건너온 매닝 형제는 펜실베이니아를 남북으로 구불구불 관통하는 서스퀴하나강의 서안에 삶은 터전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착지에 ‘웨인즈버그(Waynesburg)’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왜 웨인즈버그라는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과 싸우며 큰 공을 올린 펜실베이니아 출신 장군 앤서니 웨인을 기리는 이름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마을의 첫 의사가 웨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설이다. 그 이름을 붙이게 된 사연이야 어쨌든 멀쩡한 이름을 갖고 있던 마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은 점점 커졌고, 술집들이 몇 개 생겨났고,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는, 말하자면 지역은 작은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웨인즈버그가 붙어 있는 서스퀴하나강의 동안에 또 다른 정착지가 생겨났다. 그 동네에는 당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몰려와 살았다. 이들은 강 건너 웨인즈버그의 술집에 가서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잦아서 웨인즈버그 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새로운 이주자들은 웨인즈버그를 무시하면서 매닝 형제가 지은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저지 쇼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닝 형제가 뉴저지에서 왔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강가(shore)의 반대쪽 강가에 있기 때문에 그냥 저지 쇼어라고 부른 것이다. 놀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지만 웨인즈버그라는 이름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30년 동안 이 마을은 웨인즈버그와 저지 쇼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점점 저지 쇼어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이태원동의 일부가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회나무로’라는 공식명칭이 있지만, 사람들이 육군중앙경리단이 있기에 경리단길이라 부르는 것을 선호하면서 아무도 공식명칭에 신경쓰지 않듯, 이 지역 사람들도 부르기 쉽고, 마을의 역사와도 쉽게 연결되는 저지 쇼어를 더 많이 쓰면서 웨인즈버그는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26년, 이 마을이 법적인 지위를 갖게 되는 시점이 되자 사람들은 이 마을을 저지 쇼어로 등록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오늘날 저지 쇼어라는 표지판은 이 사연을, 그리고 미국의 지리를 잘 모르는 운전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