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뢰판사, 美·英·佛선 ‘파면’ 가능한데… 韓은 고작 ‘정직 1년’ [탐사기획-법관징계 리포트]

징계 처분으로도 파면까지 할 수 있어
日, 국민 누구나 법관 탄핵소추 청구 가능
美·英도 일반인들에 징계 청구권 부여
고위 법관들이 독점하는 국내와 대조

韓, 대법원장이 징계위원 임명 ‘폐쇄적’
뉴욕주선 주지사·의회 등 분산 ‘다양화’
판사 선출직 많아 사회적 인식 차이 보여
英·日 법관 윤리의식 높아 징계 드물어

2016년 9월 억대의 뇌물수수 혐의로 현직 부장판사가 검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많은 국민이 놀라거나 분노했고 사법부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해당 판사에게 내려진 법원 차원의 징계는 정직 1년이었다. 이는 탄핵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법관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다. 만약 같은 일이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에서 법관이 뇌물을 받았다면 파면(removal)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이소영 변호사(법무법인 루이스 실킨)는 8일 뇌물 같은 중대 범죄는 법관뿐 아니라 영국의 모든 법조인에게 자격 박탈 등 강한 제재가 불가피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영국에서) 법관의 비위는 상당히 드문 일”이라며 “법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대단히 높은데 이는 한국과 비교해 부러운 점”이라고 말했다.

법관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중시하고 판결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며 그 신분을 두텁게 보장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올바로 작동하는 국가에서 공통적이다. 그만큼 법관들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언행을 삼가고 최선을 다해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런데 자국의 법관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런 기대와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세계일보는 영국·미국·프랑스·일본 현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거나 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도움과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4개 나라의 법관 징계제도와 징계 관련 법조계 기류가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이들 나라는 법관 징계위원 구성이나 징계 청구권이 일반 시민에게도 열려 있고, 법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대체적으로 높았다.

◆법관 징계청구권 개방적이나 무분별한 청구 방지 장치 둬

우선 법관에 대한 징계청구권을 소수의 고위 법관이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누구나 징계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과 미국에선 ‘법관이 비위행위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는 누구나 법관행동조사국(JCIO·영국)이나 연방항소법원(미국)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인종·성차별적 발언, 법관 지위 남용 등의 이유로도 징계 청구가 가능하다.

다만 두 나라 모두 무분별한 징계 청구를 방지하기 위해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징계 신청을 하지 못하게 했다. 미국은 대부분의 징계 신청이 조사 단계 이전에 각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시민에 의한 판사 징계 청원 제도를 신설한 프랑스도 사법절차의 본인 관련성만 인정되면 사법관이 직무 수행 중에 한 행위에 대해 징계를 청원할 수 있다. 이 역시 판결 내용에 관해선 불가능하며 청원심사위원회를 거쳐 최고사법관회의 회부 여부가 결정된다. 최고사법관회의는 법관 징계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기구다.

외국은 법관 징계위원의 임명권을 분산시켜 징계위원 구성도 다양화했다. 대법원장이 외부인사 3명을 포함해 징계위원 7명 모두를 임명·위촉해 ‘폐쇄적’이란 지적을 받는 한국과 차이가 뚜렷했다.

가령 미국 뉴욕주는 법관 징계를 심의하는 법관윤리위원회 위원을 뉴욕주지사, 뉴욕주 대법원장, 뉴욕주 의회가 각각 4명, 3명, 4명을 지명하도록 한다. 11명의 위원 중 적어도 2명 이상은 비법률가로 구성된다. 프랑스 최고사법관회의 내 판사분과위원회 역시 판사와 변호사, 대통령·하원의장·상원의장이 사법부와 의회 바깥에서 2명씩 지명한 외부 인사 등 14명으로 꾸려진다.

징계 처분 범위는 대체로 넓었다. 한국은 최고 수위가 정직 1년이고 파면의 경우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 심판 절차가 필요하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징계 처분으로도 파면까지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의 사법체계도 행정적 절차에 따른 법관 징계는 견책뿐이지만 징계소송을 통해 파면이나 해임이 가능하다. 법관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연금청구권도 잃을 수 있다.

일본은 징계 자체는 계고(경고)와 1만엔(약 10만6000원) 이하의 과료 두 가지밖에 없지만, 국민 누구나 국회 재판관소추위원회에 법관에 대해 탄핵 소추를 청구할 수 있다. 194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만2319건의 법관 탄핵 청구가 접수돼 9건이 일본 재판관탄핵재판소에 넘겨졌다.

◆외국도 법관 징계 활발하진 않아… 일본·영국은 법관 윤리의식 엄격

다만 외국이라고 법관의 일탈이 적다거나 징계가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법관에 의한 비위가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단히 심각한 비위가 아닌 이상 징계로부터 법관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미국의 저명인사들의 신상과 사건 내용을 알리는 ‘알코올 문제 및 해결’ 사이트를 보면, 미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법관은 60명에 이른다. 미국에선 역대 15명의 연방법관이 탈세와 위증, 성범죄 등 사유로 탄핵 소추돼 8명이 인용된 바 있다.

안준성 미국 변호사는 “미국은 선거나 대통령 임명으로 판사가 되기 때문에 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국민이 기대하는 윤리의식 수준이) 여타 선출직 공직자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2010년 프랑스에선 부부싸움 도중 배우자를 때리고 흉기로 상해를 입힌 판사가 ‘연금 수령이 중지되지 않는 파면’ 결정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판사가 인터넷에서 만난 12∼13세 아동과 성적인 대화를 하고 화상 카메라 앞에서 음란행위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해임되기도 했다. 김중호 프랑스 변호사(법무법인 아르케)는 “법관의 징계 과정이 외풍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돼 있지만 (법관 징계가) 외부적으로 이슈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실제 판사책임에 대한 무거운 징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법관 개인의 비위 행위가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정해황 일본 변호사(법무법인 오르비스)는 “일본에서는 1981년 이후 부적절한 이익 수수에 따른 탄핵은 한 건도 없었다”며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판사가 뇌물을 수수했다’는 취지의 의혹 보도조차 접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소영 변호사도 “판사 임용심사 때 윤리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영국에서 판사가 징계대상이 되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며 “영국에서 변호사와 판사로 수십년간 활동한 동료 변호사한테 물어보니 ‘뇌물수령이나 부패로 징계를 받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법조팀=송은아·김선영·이창수·이창훈·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각국 국제변호사에 설문, 징계 등 국내 사례와 비교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등의 도움을 받아 각국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국제 변호사들에게 법관 징계와 신뢰도에 관한 이메일 설문을 돌렸다. 이소영 영국 변호사는 영국법학대학과 킹스칼리지 런던을 나와 영국 현지 법무법인 ‘루이스 실킨’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일교포 4세인 정해황 일본 변호사는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일본 현지 법무법인 ‘오르비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중호 프랑스 변호사는 파리2대학 출신으로 김앤장 등을 거쳐 프랑스 현지 법무법인 ‘아르케’를 설립했다. 미시간주립대와 존 마셜 로스쿨을 나온 뒤 미국에서 김앤장 외국변호사로 활동한 안준성 미국 변호사는 현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로 있다. 이들에게 과거 한국에서 벌어진 1억원 이상 뇌물수수, 음주운전 등 사건들을 토대로 각국 법조계에서 예상되는 징계 처분과 법조계 분위기, 징계 사례, 징계제도의 특징 등을 물었다. 국내 연구로는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낸 ‘각국 법관 징계제도에 관한 연구’(2014) 보고서를 주로 참고했다.